“연예인은 고급 거지다.” 개그맨 황현희가 연예인의 직업적 현실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그는 2014년 KBS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떠난 뒤 투자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하며 ‘100억대 자산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황현희는 2004년 KBS 공채 개그맨 19기로 데뷔해 약 10년 동안 ‘개그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그는 2025년 10월4일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이하 ‘동치미’)에서 당
가족은 안식처일까, 아니면 나를 갉아먹는 포식자일까. 대한민국 톱스타 김혜수, 한소희, 차예련. 이들의 화려한 드레스 자락 뒤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가족의 채무가 실존했다. 대중이 이들의 성취에 환호할 때, 정작 이들은 수십억원의 빚을 감당하며 제 명의의 집 한 칸 없는 월세방으로 내몰려야 했다. 울타리여야 할 가족이 삶을 위협하는 변수가 되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은 ‘경제적 단절’과 ‘절연’이었다. 2012년, 김혜수는 배우
오래 사용한 프라이팬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코팅이 닳거나 긁히면서 조리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음식이 쉽게 들러붙거나 세척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심하면 코팅 아래 금속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계속 사용해도 괜찮을까.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프라이팬 등에 쓰이는 코팅 재질로는 불소수지 계열이 널리 사용된다. 불소수지는 불소를 함유한 플라스틱을 통칭하는 말로, 프라이팬 코팅 소재로 알려진 폴리테트라플
의식과 무의식 사이 수면… 물결치는 기억의 바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사건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대부분은 끝내 해석되지 않는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뒤로한 채,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을 살아간다. 그 사이에 자리하는 것은 수면(睡眠)의 시간이다. 잠은 단순히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낮에 미뤄둔 질문들이
[단독] 방치된 ‘지방소멸의 그늘’… 시·도별 예산은 최대 100배 격차 [심층기획-2026 빈집 리포트]쓰레기 무단 투기로 인한 악취, 무성한 잡초, 야생동물·해충 서식, 노후화에 따른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 우려, 비행 청소년이나 노숙인 점거 등 우범지대화…. 지방자치단체들이 입 모아 말하는 ‘빈집’의 문제점들이다. 민원 처리, 환경 정비 등에 드는 행정력 낭비도 상당하다. 빈집은 지역 슬럼화나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주민 간 갈등, 공동체 와해까지 야
[설왕설래] 조선사회민주당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은 북한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의 소위 ‘우당(友黨)’으로 불린다. 1981년 현 당명으로 바꾼 조선사회민주당 뿌리는 1945년 해방 직후 민족주의 계열의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이다. 천도교청우당은 일제강점기 1919년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됐다가 해방 후 남·북에서 결성된 뒤 1950년 북조선당이 남조선당을 흡수해 발족했다.
[김기동칼럼] 사교육은 ‘필요악’인가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한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 실태에 경악했다. ‘hagwon(학원)’이라는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 의대반’까지 암암리에 운영 중이라고 한다. 사교육 광풍에 가
[기자가만난세상] 통합특별시 ‘속도전’에 가려진 것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남·광주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말 논의가 본격화한 지 두 달여 만이다. 6·3 지방선거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출 후 7월 통합특별시를 공식 출범시킨다는 로드맵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1986년 후 40년 만의 통합 소식 뒤에는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과 실질적 통합
[김태웅의역사산책]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열정과 헌신 독립운동가 김마리아가 1944년 3월13일 잦은 옥고와 병마에 시달린 끝에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러나 그의 부고 기사는 어느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매일신보’, ‘경성일보’ 등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폐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몇몇 지인을 빼놓고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김마리아의 이름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김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