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촬영하며 접한 사연을 계기로 기부에 나선 배우들이 있다. 김지원은 환아를 위해, 이성경은 외상진료 발전을 위해, 박신혜는 한부모가정을 위해 각각 1억원을 내놨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꾸준히 힘을 보태온 이들의 행보에서 나눔에 대한 진심이 엿보인다. ◆ ‘닥터X’ 촬영 중 환아 현실 접한 김지원…1억원 쾌척김지원은 SBS 새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촬영하면서 서울대어린이병원에 1억원을 기부했다. 작품에서 의료계의 부패에
200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식당. 파란 볼펜이 냅킨 위를 지났다. 열세 살 소년을 영입하겠다는, 짧은 약속이었다. 해외 축구팬이라면 익숙한 장면이다. 이 냅킨 한 장에서 리오넬 메시가 시작됐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냅킨이 경매에서 13억원에 팔렸다는 것, 그 약속을 받아낸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는 것까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열세 살 소년이 전설이 되기까지, 아버지는 늘 그 곁에 있었다. 어린 시절 메시는
사회가 늙으면 교도소도 따라 늙는다. 일본은 그 일을 먼저 겪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사회(1994년), 초고령사회(2007년)에 진입했다. 일본 국민 10명 중 3명은 노인이다. 교도소 안 고령화도 그만큼 빨리 진행됐다. 202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도 교도소 내 고령화 현상은 현실이 됐다. 한국 근대 행형 제도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비슷한 시스템 아래 같은 문제를 먼저 맞닥뜨린 일본은 노인 교정의 중심을
[단독] 의료비 떠안은 교도소… 교정 예산까지 흔들 [탐사기획-노인과 교도소]교도소에서는 법무부가 건강보험공단 역할을 대신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수용자도 병원에서는 여전히 보험 가입자와 같은 돈을 낸다. 공단이 부담하던 비용을 법무부가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 액수는 300억원을 넘어섰다. 늙은 수용자들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법무부는 결국 과밀수용 해소 예산까지 손댔다.10일 취재팀은 수용자가 직접 보내온 외
노역 열외 老죄수… 수형자 절반 넘게 작업 못해 [탐사기획-노인과 교도소]2동 거실 복도에는 창문마다 난(蘭)이 두세 개씩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난을 환하게 비췄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화분은 신발장 위에 올려뒀다. 노인들이 식물 돌보는 것을 좋아해 실내에서 키우기 쉬운 난을 골랐다고 했다. 창문 밑에는 안전바가 설치됐고, 복도 한가운데 탁자 위에는 혈압 측정기가 놓였다. 그 옆에는 휠체어가 접힌 채로 세워
[설왕설래] 전 세계 극한 가뭄 ‘헝거 스톤’(Hunger Stone)은 ‘배고픔의 돌’, ‘슬픔의 돌’, ‘기근석’으로 불린다. 유럽의 라인강, 다뉴브강, 엘베강, 모젤강 곳곳에 헝거 스톤 수십 개가 있다. 평상시에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독일과 체코 사이를 흐르는 엘베강에 1616년에 새겨진 ‘내가 보이면 울어라’(Wenn du mich seehst, dann weine)라는 문
[주춘렬 칼럼] 위험천만한 부자증세 “네 몫은 하나고 내 몫은 열아홉이야. … 차를 운전하면 통행료를, 자리에 앉으면 좌석료를, 춥다면 난방비를, 산책한다면 발에도 세금을 걷을 거야.” 60년 전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가 당시 영국 사회에 만연했던 징벌적 세금 광기를 풍자한 노래 ‘택스맨’에 나오는 가사다. 집권 노동당은 부자증세와 복지 포퓰리즘에 기대 소득세를 무려 95%나 물렸다고 하니 과
[기자가만난세상] 요즘 경마장 가보셨나요 “경마는 스포츠인가요? 도박인가요?” 최근 가까운 지인 30명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결과는 놀랄 만큼 팽팽했다. 스포츠라고 답한 사람은 16명, 도박이라고 답한 사람은 14명이었다. 30명이라는 작은 표본이지만, 경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경마가 유독 이런 질문을 피하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김태웅의역사산책] 계용묵의 약자 연민과 생활소설 1904년 9월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소설가 계용묵이 1961년 8월 9일 장암으로 별세했다. 아무개 일간지는 그의 부음을 보도하면서 1925년 단편소설 ‘상환(相換)’으로 데뷔한 뒤 이른바 경향파 작품을 수 편 발표하였다가 1935년 ‘백치 아다다’ 발표를 계기로 순예술파로 전향했음을 덧붙였다. 이러한 소개는 그가 데뷔 초기에는 리얼리즘 소설을 통해 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