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안식처일까, 아니면 나를 갉아먹는 포식자일까. 대한민국 톱스타 김혜수, 한소희, 차예련. 이들의 화려한 드레스 자락 뒤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가족의 채무가 실존했다. 대중이 이들의 성취에 환호할 때, 정작 이들은 수십억원의 빚을 감당하며 제 명의의 집 한 칸 없는 월세방으로 내몰려야 했다. 울타리여야 할 가족이 삶을 위협하는 변수가 되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은 ‘경제적 단절’과 ‘절연’이었다. 2012년, 김혜수는 배우
어머니 장례비조차 없어서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던 22살 특전사 청년. 그로부터 20년 뒤, 가수 박군의 손에는 눈물 대신 15억원 상당의 서울 신축 아파트 등기부가 놓였다. 남들이 유흥에 빠질 때 훈련장과 내무반을 지키며 버틴 15년, 그 성실함이 일궈낸 무게다. 옥탑방 한기 속에서도 10원 한 장 아껴가며 쌓아 올린 이 숫자는 운이 아닌 철저한 자기 관리가 만든 마침표다. 3월 9일 생일을 맞이하며 팬들의 축하를 받은 그에게 이번 성적표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황금빛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주제가 ‘골든(Golden)’처럼 반짝이는 밤이었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작품은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거머쥐며 2관왕에 올랐다. 올해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지난달 그래미 수상에 이어 오스카까지 석권하며, K팝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작품의 글로벌 돌풍을 금빛 피날레로 장식했다
“스팸 의심 전화입니다” 아들보다 낫네…진화하는 스마트폰 ‘4억건 철벽 방어’ [수민이가 궁금해요]최근 삼성 갤럭시 S26 모델로 휴대폰을 바꾼 최모씨(62·여)는 종종 이런 문자가 뜬 전화를 받는다. 하루에도 10여 통이 넘는 스팸 전화, 문자를 받아온 최 씨는 이 메시지가 뜨는 전화는 일체 받지 않는다. 최씨는 “요즘은 010으로 시작되는 일반 핸드폰 번호로도 스팸 전화가 오니 안 받을 수 없었다”면서 “새 기종의 전화가 스팸 전화를 걸러서 알려주니
[단독] 방치된 ‘지방소멸의 그늘’… 시·도별 예산은 최대 100배 격차 [심층기획-2026 빈집 리포트]쓰레기 무단 투기로 인한 악취, 무성한 잡초, 야생동물·해충 서식, 노후화에 따른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 우려, 비행 청소년이나 노숙인 점거 등 우범지대화…. 지방자치단체들이 입 모아 말하는 ‘빈집’의 문제점들이다. 민원 처리, 환경 정비 등에 드는 행정력 낭비도 상당하다. 빈집은 지역 슬럼화나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주민 간 갈등, 공동체 와해까지 야
[설왕설래] 조선사회민주당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은 북한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의 소위 ‘우당(友黨)’으로 불린다. 1981년 현 당명으로 바꾼 조선사회민주당 뿌리는 1945년 해방 직후 민족주의 계열의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이다. 천도교청우당은 일제강점기 1919년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됐다가 해방 후 남·북에서 결성된 뒤 1950년 북조선당이 남조선당을 흡수해 발족했다.
[김기동칼럼] 사교육은 ‘필요악’인가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한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 실태에 경악했다. ‘hagwon(학원)’이라는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 의대반’까지 암암리에 운영 중이라고 한다. 사교육 광풍에 가
[기자가만난세상] 통합특별시 ‘속도전’에 가려진 것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남·광주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말 논의가 본격화한 지 두 달여 만이다. 6·3 지방선거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출 후 7월 통합특별시를 공식 출범시킨다는 로드맵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1986년 후 40년 만의 통합 소식 뒤에는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과 실질적 통합
[김태웅의역사산책]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열정과 헌신 독립운동가 김마리아가 1944년 3월13일 잦은 옥고와 병마에 시달린 끝에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러나 그의 부고 기사는 어느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매일신보’, ‘경성일보’ 등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폐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몇몇 지인을 빼놓고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김마리아의 이름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김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