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숨긴 채 끝까지 현장을 지킨 이들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뒤에서는 긴 투병을 견디고 있었다. 배우 김지영과 김영애, 방송인 허참은 암 진단 이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리에 서있었다. 세 사람은 병을 알리는 대신 평소처럼 일터로 향했다.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병세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중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마지막 활동에 담긴 의미를 다시
방송인 전현무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힌 축의금 액수가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연봉 2000만원의 아나운서에서 시작해 이제는 한 번에 축의금 500만원을 내는 재력가가 된 그는 지금까지 지출한 부조금 총액이 1억원대에 달한다고 고백했다. 일반적인 기준을 상회하는 이 금액은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연간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거대 IP가 점유율 유지를 위해 지불하는 사회적 유지비인 셈이다. 그는 프리랜서 선언 초기부
국내 대표 문학·인문 출판사인 민음사가 북클럽 회원들에게 휴대전화 번호 목록이 포함된 문자를 오발송해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휩싸였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민음사는 11일 오후 북클럽 회원 약 4000명을 대상으로 행사 안내 문자를 발송하는 과정에서 회원 휴대전화 번호 140여개가 포함된 메시지를 잘못 전송했다. 문자를 받은 회원들은 자신의 번호를 포함한 다수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됐다며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제기했다. 민음사 북클럽 유료 회원 박
아빠의 기타 메고 공연하던 딸, 온라인 세상에선 삶을 고민… 딸을 안다는 확신은 자책이 됐다 [탐사기획-자살예방법, 국가의 책무]딸이 광호에게서 가져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광호는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딸 하진은 퇴근 후 현관문에 들어선 광호에게 손부터 내밀었다. “아빠, 차 키 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 하진의 손에는 노란색 앨범 커버가 씌워진 카세트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영국 록밴드 ‘블러’의 3집 앨범 ‘파크라이프’다. 자기가 태어나기 13년 전에 발매된 앨범을
판사 되고 싶은 현직 검사들‘법조일원화’의 사전적 의미는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 교수 등으로 분리돼 있던 법조 직역 간의 벽을 허물어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데 한국에선 법관의 임용 방식을 두고 법조일원화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 듯하다. 과거 사법연수원이 있던 시절 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판사가 되는 ‘즉시임용제’와 달리 변호사 자격 취득 후 일정한 기간 동안 법조계에서 일한
[설왕설래] 특임공관장 특임공관장은 대통령이 특별한 외교 업무를 맡기기 위해 현직 외교관이 아닌 별도 전문가를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외교관 출신보다 국내정치적으로 힘 있는 공관장들이 더 큰 성과를 거두곤 했다. 하지만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나 특수 임무에 맞는 전문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인사권자의 뜻대로 임
[김기동칼럼] ‘1가구 1주택’이라는 미몽(迷夢)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더불어민주당이 강령을 고치면서 경제 부문에 ‘실수요자 중심의 1가구 1주택’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정부의 다주택자를 겨냥해 내놓은 ‘징벌적’ 중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이다. 급기야 민주당 진성준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은 ‘1가구 1주택’을 주거의 기본원칙으로 정하고, 집을 통한 재산증식을 금지하는 주거기본법 개정안까지
[기자가만난세상] ‘메이드 인 차이나’의 변신 “중국 차가 오면 좋은 거예요.” 지난달 24일 국제 모터쇼 ‘오토 차이나 2026’ 취재를 위해 방문한 중국 베이징. 중국의 ‘우버’로 불리는 승차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으로 차량을 호출한 특파원 선배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당일 모터쇼 장면을 떠올려 보니 수긍이 됐다. 그만큼 현장에서 목격한 중국 현지 브랜드의 위세는 대단했다. 직접
[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서희 협상 뒤에 국왕 성종이 있었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평소에 인재를 길러두지 않으면, 큰 위기가 닥쳐도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993년에 거란군의 침입이 없었다면 “한국사 최고의 협상가” 서희의 이름도 역사에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고려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인물을 키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958년(광종 9), 고려는 과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