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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 헤치며 드나든 고깃배와 애환 반세기…묵호등대

입력 : 2010-12-11 00:29:11 수정 : 2010-12-11 0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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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곳
멜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
밤이면 은은한 조명 환상적 분위기
“당신에게도 등대가 있습니까?” 
◇동해시 묵호동 언덕에 있는 묵호등대. 47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등대에서는 동해와 백두대간의 두타산을 비롯해 청옥산, 동해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뱃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등대가 요즘에는 사랑을 기약하고 가족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언약의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세밑에 문득 지난 열두 달 동안 자신에게 등대가 되어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그 등대는 또 얼마나 큰 위안을 가져다주었으며, 우리는 누구의 등대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일까?

늘 그 자리에서 먼 항해를 떠난 배들이 돌아와야 할 좌표를 알려주고 길라잡이가 되어준 든든한 등대를 찾아보자. 

‘마음속의 등대’를 생각하며 동해안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동해시 묵호등대를 찾았다. 동해시 하면 누구나 바다 저편에서 용광로 불덩이처럼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떠올리게 된다. 동해시가 해맞이 명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망망대해가 거칠 것 없이 펼쳐져 있고, 기암절벽으로 연결된 아름다우면서도 긴 해안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동해시는 ‘동트는 동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동해시에서도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은 묵호등대. 묵호동 산 중턱에 세워진 등대에 오르면 바다가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언덕 아래에는 등대를 뒤로하고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정겨운 어촌마을이 있다. 묵호등대는 1963년부터 묵묵히 어선들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다. 등대 앞에는 불꽃을 형상화한 조각과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시구가 새겨진 소공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정소영 감독의 멜로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이를 기념하는 ‘영화의 고향’ 기념비가 세워졌다.

요즘에는 등대 주변에 젊은 연인들이 찾아와 촛불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고 프러포즈를 하는가 하면,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해마다 연초에는 해맞이를 위해 찾아오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평소에도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 해맞이 관광객으로 등대 주변은 늘 초만원이다.

등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어가는 산책로 끝에는 출렁다리가 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 무대가 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출렁다리 위에서 다정스레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누군가가 써놓은 ‘지금 사랑이 흔들린다면 손을 잡고 출렁다리로 가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추암 해변에 있는 형제바위 주변에 갈매기가 날아들어 겨울바다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등대 건너편에는 또 하나의 작은 공원이 들어서 있다. 도째비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인근 항구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면서 몇 해 전부터 주민들은 모두 이주했다. 목재데크를 이용한 갈지자형 등산로를 만들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내년 봄엔 영산홍과 과일나무 등이 꽃을 피우고 가장 높은 곳엔 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묵호등대에 오르는 길은 우리네 힘든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좁고 가파른 등대 오름길 주변엔 붉거나 푸른 지붕을 한 작은 집들이 처마를 맞댄 채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산등성이에 들어선 집들 사이로 난 골목이 논골길이다. 이 길은 해맞이길과 등대오름길로 이어진다.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을 얹은 집들로 빼곡한 논골길은 담장들이 위태롭다. 뱃사람들과 시멘트·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았다는 이곳은 지금은 빈자리가 많아졌다. 생선 비린내로 천지가 진동했을 덕장 자리엔 오징어와 명태 몇마리 만이 줄지어 하늘을 이고 있다.

◇묵호등대는 밤이 되면 옷을 갈아입는다. 은은한 LED 조명이 밝혀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언덕 꼭대기에는 육중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부터 묵호항에서 등대로 이어지는 논골길에 ‘묵호벅스’ 커피숍과 ‘고무신은 항상 집 방향으로 놓기’ 등의 벽화가 등장했다. 배 타러 간 남편의 순조로운 항해를 기원하며 신발을 항상 집 방향으로 놓아두곤 한 옛 풍습을 표현한 고무신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애절하게 한다.

동해시에서 묵호등대와 함께 해맞이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 추암이다. 등대에서 삼척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20여분 달리면 동해시 추암동 능파대가 나온다. 조선시대 재상 한명회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감탄해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라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해변 왼쪽으로 난 언덕을 비스듬히 끼고 전망대까지 올라 도는 길의 비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전망대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장관이다. 해안 절벽과 동굴, 칼바위 등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몰려 있고 그 중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것이 촛대바위다. 주변에는 30여점의 조각작품이 전시된 추암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1월1일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동해=글·사진 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 여행정보

◆가는 길=수도권을 기준으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강릉 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갈아탄 뒤 망상IC에서 빠져나와 7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국도를 이용할 경우 38번 국도 평택과 제천, 태백을 통과해 동해로 가거나, 42번 국도 원주와 정선을 걸쳐 동해로 가는 노선이 있다. 서울 강남,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동해시터미널을 연결하는 직행 버스도 있다.

묵을 곳=동해그랜드호텔과 동해비치호텔 등 9개의 호텔과 30여개의 모텔이 있다. 펜션과 민박도 많아 숙박 시설은 충분한 편이다. 동해시청 관광진흥과(033-350-2473)로 연락하면 숙박 시설을 소개받을 수 있다. 망상해변에는 동해시가 직영하는 망상오토캠핑리조트(033-534-3110)가 있다.

먹을 곳=동해는 어느 음식점에서나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부흥횟집(033-531-5209)은 40년 전통의 동해를 대표하는 맛집이다. 동백식당(033-532-0661)은 묵호항에서 갓 잡은 재료로 얼큰하고 담백하게 끓여내는 해물탕이 일품이다. 대진항 어촌체험관광마을에 있는 대진활어회센터(033-535-7955)는 어민들이 직접 잡아 온 신선한 생선을 곧바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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