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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도중 군대에 휴가 내고 US 오픈 나가 우승한 美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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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1 10:15:18 수정 : 2025-09-01 12:20:34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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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0년대 미국 테니스 스타 조 헌트
2차대전 발발 이후 해군 조종사 되기로 결심
종전 직전 1945년 2월 비행 훈련 도중 순직

요즘 미국에서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이 한참 진행 중인 가운데 미 국방부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테니스 스타인 조 헌트(1919∼1945) 전 해군 대위를 기려 눈길을 끈다. 헌트는 전쟁 도중인 1943년 해군에서 휴가를 얻어 US 오픈에 출전한 뒤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1일 미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 퀸즈 아서 애쉬 경기장(Arthur Ashe Stadium)에서 ‘헌트 대위에게 감사하는 날’ 기념식이 열렸다. 미 해군을 대표해 행사에 참석한 마이클 보일 해군본부 국장(소장)은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후 헌트가 테니스 선수에서 해군 조종사로 변신해 참전한 사실을 언급하며 “동시대 수많은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헌트 대위도 자신의 개인적 성취를 제쳐두고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고 평가했다.

 

2차대전 도중인 1945년 초 미국 해군 전투기 F6F 헬캣 조종사로 활동하던 조 헌트(1919∼1945) 대위. 해군 입대 전까지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테니스 스타들 중 한 명이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올해는 헌트가 2차대전의 종전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지 80주기가 되는 해다. US 오픈 주최 측은 2019년부터 매년 대회 기간 도중 미 국방부, 해군 등과 공동으로 ‘헌트 대회에게 감사하는 날’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헌트는 1919년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이 남달랐고 특히 테니스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헌트는 고교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해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 미 전역의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테니스 대회를 석권하며 일약 스포츠 스타로 부상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0년 미국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징병제를 도입했다. 이에 헌트도 병사로 입대했는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군 당국은 헌트를 해군사관학교에 편입시켜 장교 과정을 밟도록 했다. 해사 생도 시절 헌트는 학교를 대표하는 아메리칸풋볼 선수로 활동했다. 1941년 11월2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해사 대 육사 풋볼 시합에서 헌트가 맹활약을 펼친 해사는 14-6으로 육사를 압도했다.

 

2차대전 도중인 1943년 9월 US 오픈 챔피언이 된 조 헌트 미국 해군 대위(오른쪽)가 우승컵을 넘겨받고 있다. 당시 그는 해군에 휴가를 내고 US 오픈에 출전했다. 왼쪽은 결승전에서 헌트와 맞붙었다가 패배한 준우승자 잭 크래머 선수. 미 국방부 홈페이지

그로부터 채 열흘도 안 돼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국이 2차대전에 뛰어들면서 원래 1942년 5월쯤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던 헌트와 그 동기생들은 6개월가량 앞당긴 1941년 12월19일 조기 졸업을 하고 전장에 배치됐다.

 

애초 수상함 장교였던 헌트는 이왕 전투에 참여하게 된 이상 조종사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1943년 12월 댈러스에 있는 해군 항공 기지에 입교했다. 1944년에는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의 해군 항공 기지로 옮겨 한 차원 높은 고급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를 몰고 출격해 일본군과 싸우고 싶어했던 헌트의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2차대전 마지막 해인 1945년 2월2일 지상에서 F6F 헬캣 전투기를 몰고 발진한 헌트는 훈련 비행 도중 대서양으로 추락해 숨졌다. 헌트의 시신과 항공기 기체는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아메리칸풋볼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던 조 헌트. 1940년 미국이 징병제를 도입함에 따라 병사로 입대한 헌트는 군 당국의 판단에 따라 해사 생도로 편입해 해군 장교 과정을 밟았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헌트는 조종사 교육 과정에 입문하기 직전인 1943년 9월 해군에 휴가를 내고 US 오픈에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잭 크래머(1921∼2009)를 꺾고 챔피언에 올랐다. 헌트의 짧은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으로 남았다. 이듬해인 1944년 헌트는 US 오픈 챔피언 타이틀 방어를 위해 다시 휴가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는 해군이 허용하지 않아 출전하지 못했다. 사후 21년이 지난 1966년 헌트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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