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프로야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무대였던 2011 아시아시리즈에서 삼성은 지난 29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일본)를 제물로 한국팀으로는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한·일 야구의 격차가 또 한 번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일본 언론은 30일 ‘일본 야구의 수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 프로야구는 2005년부터 4년간 열렸던 이 대회에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두 차례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3년 만에 부활한 올해 대회에서 삼성이 소프트뱅크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축배를 들면서 지긋지긋한 일본 징크스도 막을 내렸다. 삼성의 선발투수 장원삼은 물론 이후 삼성이 자랑하는 막강 방패에 타선이 묶이면서 3-5로 패해 소프트뱅크는 생각지도 못한 굴욕을 맛봤다.
한국 야구는 대표팀끼리 맞붙는 국가 대항전에서는 여러 차례 일본을 잡고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대표팀은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을 두 번이나 꺾어 세계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4강 신화를 이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예선과 준결승에서 기동력과 이승엽의 극적인 홈런을 앞세워 일본을 연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년 제2회 WBC 결승에서는 비록 연장 접전 끝에 일본에 3-5로 져 우승컵을 내줬으나 일본과 네 차례 맞붙어 2승씩을 주고받는 명승부를 연출하고 한국 야구의 강렬한 인상을 지구촌 야구팬들의 뇌리에 심었다.
일본과 만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국민 정서가 국가 대항전에서 대표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나 클럽 대항전인 아시아시리즈에서만큼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대표 선수와 달리 프로 단일팀 선수들은 아시아시리즈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12개 팀을 축으로 양대리그를 운용하는 일본 프로야구 팀과의 맞대결에서는 아직은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 깊게 자리 잡으면서 아시아시리즈에서의 한·일전 승부는 긴장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과 WBC를 통해 한국 야구의 위상이 달라지고 프로야구도 올해 사상 처음으로 관중 6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양적인 팽창이 이어지면서 아시아시리즈에서 삼성의 우승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에 정신 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은 삼성은 야구계의 기대대로 결승에서 일본 최강 소프트뱅크를 물리쳤다. 한국 프로야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일본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셈이다.
유해길 기자 hk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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