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그림자 지우고 MB식 ‘상호주의’ 분명히
대북인식 전환 가속도… 野 반발 등 논란 예고 ‘북한=주적(主敵)’ 개념 부활 결정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현실적 위험을 체험한 데 따른 예고된 수순으로 풀이된다. 또 천안함 ‘이후’의 대북 기조와 안보 태세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상징적 조치다. 과거 정권 ‘햇볕정책’의 그림자를 지우고 ‘상호주의’ 원칙을 엄수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신(新)냉전시대’가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온다.
북한이 명백한 군사 도발로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정부로선 한국전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대국민 담화에서 “대한민국은 앞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공세적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그런 만큼 국가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북한을 상존하는 제일 적대세력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점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북한=주적’ 개념은 2004년 국방백서 이후 ‘직접적 군사위협’,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으로 대체됐다. 성격 규정이 모호한 채로 방치되면서 주적 개념이 사라진 셈이다.
발발 60년을 맞은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다. 이런 사실이 천안함 비극으로 재각인됐는데도 북한을 주적으로 적시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만난 군 출신 원로, 외교안보전문가 등은 이런 부조화에 대한 해결을 건의해왔다는 후문이다.
주적 개념 부활은 대북 정책 기조의 ‘패러다임 시프트(인식의 전환)’와도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담화에서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대북 기조의 전면적 수정을 알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햇볕정책’으로 불렸던 대북 포용정책을 대폭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주적 개념 혼란뿐 아니라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대북 지원 행태 등이 패러다임 시프트 범위에 모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의 안보태세 해이와 국민의 안보의식 이완도 주적 개념 부활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과거 군은 북측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에도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정부 눈치를 보는 일이 잇따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이어 이날 제3차 국민원로회의에서도 그간 군이 주적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데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남한에게도 좋다”는 국민, 특히 젊은이도 적지 않다. 주적 개념 부활은 안보의식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는 주적 개념을 오는 10월 발간될 국방백서에 어떤 식으로 표기할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명시적 개념이 확정되면 이에 맞춰 군 전력 강화와 작전계획 변경, 안보태세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 정부 출범 후 주적 개념 부활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 등 야권은 거세게 반격한 바 있다.
허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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