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정치혼란 등 2차피해 우려 “거리 곳곳에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부상자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참상은 전시(戰時)보다 참혹한 수준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 CNN 방송은 13일 “거리에 한 개의 건물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상황이 매우 끔찍하다”고 전했다. 시신은 안치할 곳이 없어 거리에 그냥 쌓아 뒀으며 무너진 학교 인근에는 어린이 시신이 참혹하게 나뒹굴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AP통신의 아이티 특파원인 조너선 카츠는 14일 강진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면서 “아이티 사람들에게 비극은 점심만큼이나 흔하다”며 자연재해와 정정 불안에 시달려온 아이티 국민들의 고통을 전했다.
이번 강진으로 사망자가 1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는 등 중앙아메리카 최빈국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이 금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될 조짐마저 보인다. 2004년 인도양 국가들을 덮친 쓰나미(지진 해일)는 22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번 지진은 최근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지 병원 대부분이 무너지는 등 의료 체계가 마비돼 사망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포르토프랭스 병원 중 붕괴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문을 연 병원은 단 한 곳뿐이라고 아르헨티나계 병원 원장인 다니엘 데지몬이 밝혔다. 국제의료봉사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병원 세 곳도 모두 정상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적십자 아이티 사무소 측은 “지진으로 우리도 마비됐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의료 장비가 부족하고 심지어 시신을 안치할 공간도 없다”고 말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병원도 큰 피해를 입어 중장비와 의료 장비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현재 부상자들은 인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아이티는 최근 악재가 겹쳐 이번 대지진은 말 그대로 대재앙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지진 후 3∼4일이 지나면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지는데, 피해지역은 도로 등이 끊겨 아직 구조대의 손길이 현장 깊숙이 닿지 않고 있다. 대부분 지역에서 물과 전기의 공급도 중단됐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열대성 전염병이 만연한 직후여서 지진 후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리 라토르튀 상원의원은 “지진 사망자가 50만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은 지진이 치안 부재, 정치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부 건물과 유엔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 등 국제기구 건물이 무너지면서 정부의 행정·치안 능력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지진으로 교도소 건물이 무너져 수감자가 대거 탈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반정부 세력이 혼란을 틈타 준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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