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를 닦고 집을 지을 때는 누구나 자손대대로 살아주기를 바라지만 못난 자식 고향지킨다는 말이 증명하듯 똑똑한 자손은 모두 떠나므로 장구한 세월동안 한곳에 눌러 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통념을 깨고 7백80년동안 고집스레 세거지지를 지킨 사람들이 있어 놀라움을 주고 있다.시골의 집성촌도 아닌 서울에서 26대째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려 희종6년(1210) 현집주인의 23대조가 처음 자리잡았다는 서울 도봉구 번동의 2백평 남짓한 집터가 그곳이다.
그러니까 최충헌이 국권을 틀어쥐고 활동리에 고래등같은 집을 짓던 바로 그해부터 살기 시작하여 대를 물려 살았고 지금도 4대가 함께 산다고 한다.
기담서에 <서울 동북쪽 혜화문밖 10여리에 번리가 있는데 본디 이름은 벌리였다.운관비기의 「이왕 도한양」이라는 도참을 믿은 고려조가 숙종9년(1104) 한양에 남경부를 세우고 이씨성을 가진 사람을 골라 부윤에 임명하였다.또 삼각산 밑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었다가 무성하게 자라면 가차없이 베어 지기를 눌렀는데 그곳을 벌리라 불렀다.조선조가 들어선 뒤 소리가 비슷한 번리로 고쳤다>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오늘의 번동일대는 당시 오얏나무밭이었을 공산이 크다.무슨 연유로 그들의 조상이 금지였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상고할만한 기록이 없어 신빙성에 문제가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곳이 최근까지도 그들의 집성촌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토착민임은 분명한 것같다.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살아 역대정권의 표창을 받고 화목하게 사는 비결로 참을 인(인)자 백자를 써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그들 말을 사실로 믿는다면 그들이 26대를 한곳에 머물러 살수 있었던 조상전래의 비법은 또 무엇인지 많은 사람을 궁금하게하기에 충분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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