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남의 손을 빌려 겨우 확정했지만, 어쨌든 정규리그 우승이란 열매는 달다. LG가 2년 만에 KBO리그 정규 시즌 패권을 탈환했다.

LG는 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NC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3-7로 패했다. 지난달 27일 2위 한화에 9-2로 승리를 거두며 정규리그 우승 자력 확정을 위한 매직넘버를 ‘1’만 남겨뒀던 LG는 지난 29~30일에 한화, 두산에게 연거푸 패했다. 이날도 NC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면 한화의 경기 결과에 없이 상관없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5강 막차를 타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NC에게 덜미를 잡히며 올 시즌을 85승3무56패로 마무리했다.
마침 LG가 패한 시점에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고 있던 SSG와 한화의 경기는 한화의 5-2 리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화가 그대로 승리를 거두고, 3일 수원 KT전마저 승리를 거두면 LG와 한화는 시즌 성적이 85승3무56패가 똑같아지며 4일 잠실에서 1위 결정을 위한 ‘타이 브레이커’ 단판 승부가 펼쳐질 수 있는 상황. LG가 매직넘버 1을 남겨놓고 통한의 타이 브레이커를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는 시점에서 SSG가 LG의 구세주로 나섰다. 한화는 5-2로 앞선 9회말 마무리 김서현을 올렸고, 김서현은 공 2개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내며 경기 종료에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놨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고 했던가. 아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던 요기 베라의 영혼이 인천에 강림한걸까. SSG의 류효승이 안타로 출루했고 대타 현원회가 왼쪽 담장을 넘는 2점 홈런을 때리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SSG가 4-5로 추격했고, 흔들린 김서현은 정준재를 볼넷으로 내보내 위기를 자초했다. 이어 타석에 선 이율예가 왼쪽 담장을 살짝 넘는 극적인 역전 끝내기 2점 홈런을 날리면서 SSG의 6-5 승리. 이는 곧 올해 정규시즌 우승팀이 LG로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 3경기에 졸전을 펼쳤고, SSG을 칼을 빌려 얻게 된 쑥스러운 정규리그 우승이긴 하지만, 어쨌든 LG는 가을야구의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LG의 정규리그 우승 원동력은 간단하다.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던지고, 잘 잡았다. LG 타선은 이날 경기 전까지 팀 타율 1위(0.278), 팀 득점 1위(785점), 팀 볼넷 1위(601개), 팀 OPS 2위(0.773), 득점권 타율 3위(0.281), 팀 도루 4위(121개) 등 타격 주요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팀 최고실책 3위(92개), 팀 평균자책점 3위(3.77) 등 수비와 마운드도 수준급이었다. LG의 고른 투타 밸런스를 따라올 팀은 없었다.

특히 선발진의 분전이 눈부셨다. LG의 선발 평균자책점은 지난달 30일 기준 3.505로 한화(3.509)를 제치고 1위다. 요니 치리노스(13승), 임찬규-손주영-송승기(이상 11승) 등 선발진 중 4명이 선발 10승 이상에 규정이닝을 동시에 달성했다. 창단 후 첫 기록. 외인 투수 한 자리도 교체된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4승), 코엔 윈(1승)에 8월부터 팀에 합류한 톨허스트(6승)의 승수까지 합치면 11승이다. 선발 로테이션 다섯 자리에서 모두 10승 이상을 올렸다는 얘기다. ‘투수놀음’이라 불리는 야구에서 선발투수 5명이 착착 돌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매 경기 계산이 되는 경기 운영이 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그 최강의 투타 밸런스를 앞세워 LG는 개막 7연승, 시즌 첫 22경기 18승4패로 시즌 초반 독주했다. 시즌 초반부터 타팀과의 비교 불가한 상승세를 타는 모습을 두고 2022년 SSG 이후 3년 만에 시즌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를 기록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환상적인 3~4월을 보냈지만, 5월부터는 투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2년차 외국인 투수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의 부상을 시작으로 ‘출루머신’ 홍창기가 5월 중순 수비 도중 동료와 충돌해 무릎 인대 손상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LG 역사상 최고 외인 타자 오스틴 딘도 7월 한 달 여간 옆구리 통증으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4월말부터 5월초까지 12연승, 7월초에 10연승으로 1985년 삼성 이후 40년 만에 한 시즌 두 차례 10연승 이상을 기록하며 ‘미친 상승세’를 보여준 한화에게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7월 초엔 공동 3위까지도 내려앉았던 LG는 전반기를 2위로 마치긴 했지만, 선두 한화에 4.5경기 뒤졌다. 후반기 초반엔 5.5경기까지 승차가 벌어지면서 선두 탈환보다는 2위 사수가 현실적인 목표로 보였다.
그러나 후반기 시작과 함께 한층 탄탄해진 팀워크와 조직력을 앞세워 대반격에 나섰다. 7월말부터 연승 행진을 벌이더니 ‘8월 대약진’을 통해 단숨에 크게 벌어졌던 격차를 지워버림과 동시에 선두를 탈환했다. 야구계에선 통상적으로 승차 3경기를 줄이는 데 한 달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LG에겐 5.5경기 승차를 줄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2일에 불과했다. LG는 7월말~8월에 걸쳐 13연속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는 등 8월에만 18승1무6패를 기록했다. 5.5경기차까지 벌어졌던 한화와의 격차는 어느새 반대로 뒤집혀 LG가 한화를 5.5경기차까지 따돌리는 상황까지 연출됐고, 우여곡절 끝에 선두 수성에 성공했다.

이러한 반전이 연출 가능했던 건 2023년 부임해 통합우승을 일궈낸 뒤 사령탑 3년차를 맞이하는 염경엽 감독의 지도력과 용병술, 선수 육성 덕분이었다. 지난해 8년차 유망주 손주영을 준수한 선발투수로 발굴해낸 염 감독은 올해엔 군 제대 후 돌아온 송승기를 5선발로 안착시켰다. 두 좌완 듀오가 믿음직한 10승 투수로 성장하면서 LG는 향후 몇 년간 선발진 걱정을 지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FA로 영입한 장현식이 몸값을 못해주는 상황에서 고졸신인 김영우를 필승조로 성장시키며 불펜의 구멍도 메워냈다.

야수진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대주자 요원에서 지난해 염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주전 2루수로 자리잡은 신민재는 올 시즌엔 홍창기의 부상 공백을 메우는 톱타자로도 활약하며 리그 최고의 2루수로 성장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특급 유틸리티’ 구본혁의 존재 덕분에 부상이나 부진에 빠진 선수들의 공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문보경은 당당히 ‘쌍둥이 군단’의 4번 타자로 발돋움했고, ‘정신적 지주’이자 야수 최고참 김현수는 지난 2년 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해 32홈런을 친 오스틴은 8월초 부상 복귀 이후 맹타를 휘두르며 31홈런으로 LG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30홈런 기록을 작성했다.



프런트도 현장의 요구에 발맞춘 안성맞춤 지원으로 든든히 뒤를 받쳤다. 부진한 에르난데스를 대신해 8월초 데려온 톨허스트가 대표적인 예. 그는 8월 한달간 4경기 4승 평균자책점 0.36으로 맹활약하며 8월 대약진의 중심에 섰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2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쥔 LG는 이제 24일부터 시작되는 한국시리즈에 초점을 맞춘다. 2년 전 통합우승 당시 “왕조를 만들겠다”던 외침은 지난 시즌 3위로 무산됐지만, 징검다리 통합우승을 위해 다시 한 번 왕조 건설의 시동을 거는 LG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