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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신라호텔 ‘노쇼’와 호텔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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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1 23:09:10 수정 : 2025-10-01 23:09:09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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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이 한 마을의 호텔에 예약금으로 10만원을 지불했다. 이 돈은 가구점과 치킨집을 거쳐 문방구 주인이 호텔 외상값 10만원을 갚으면서 지역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2017년 19대 대선 경선 당시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지역 화폐 효과와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른바 ‘호텔 경제학’ 논리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낮춰 부르며 회자됐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호텔 경제학 논란이 벌어졌다. 중국 측이 정상회담 등을 염두에 두고 계약서·예약금 없이 신라호텔의 객실 462개와 부대시설을 ‘통째’ 대관 예약했다. 호텔 측은 기존 고객의 결혼식 일정을 불가피하게 취소하거나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호텔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중국 최고위급 인사의 숙소 제공은 국익과 외교 차원에서 중요하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큰손’ 고객과 VIP 마케팅 효과, 이미지 제고 등을 고려할 때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호텔 측은 예정된 결혼식 여러 건의 취소·변경을 통보했고 객실 112개를 취소했다.

하지만 돌연 중국 측이 예약을 취소하면서 사달이 났다. 부랴부랴 호텔 측은 기존 결혼식 일정을 바꾼 고객에게 최초 예정된 날짜에 결혼식을 치를 수 있다고 안내하고, 객실 예약도 재개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것이 이 대통령이 얘기하는 호텔 경제학이냐”며 정부와 호텔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호텔 전체를 빌려놓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건 ‘갑의 횡포’다. 호텔의 손해도 막심하다. 결혼식 일정 변경에 따른 비용 지원은 호텔의 몫이다. 고객 신뢰를 잃으며 최고급 호텔이라는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일방적으로 취소한 중국을 상대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직접 예약금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힘의 논리가 만연하는 호텔 경제학의 냉혹한 현실이다. 중국의 ‘노쇼’로 결혼식을 준비해 온 예비신혼부부들이 국가적 행사라는 이름 아래 혼란을 겪은 것은 두고두고 논란으로 남을 것이다. 국민의 시간·심리적 피해는 어쩔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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