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1일 열린 2025 KBO 신인 드래프트.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전체 1순위가 누구냐였다. 1순위 후보는 둘. 덕수고 좌완 정현우와 전주고 우완 정우주. 이른바 ‘정씨대전’이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폭발력은 정우주가 우위라는 평가였지만, 선발로서 경기 운영과 기복없는 투구는 정현우가 앞선다는 평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키움의 선택은 정현우였다. 자연스레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화는 정우주를 선택했다. 그렇게 정우주는 주황색 유니폼을 받아들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현재. 프로 데뷔 시즌은 2순위 정우주의 완승으로 판명나는 분위기다. 정현우도 시즌 초반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됐으나 18경기 81.1이닝 3승7패 평균자책점 5.86에 그쳤다. 볼넷도 48개나 될 정도로 제구력도 형편없었고, 고교 시절 150km 이상을 뿌린다던 포심도 140km 초반대에 그치며 삼진 능력도 떨어지는 모습이다.
선발로 뛴 정현우와 달리 불펜으로만 주로 뛰던 정우주는 29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LG전에서 자신의 선발 재능도 유감없이 뽐냈다. 생애 첫 선발 데뷔전이었던 지난 15일 키움전에서 2.1이닝 2실점으로 다소 부진했었던 정우주지만, 자칫 패배할 경우 LG에게 정규리그 우승을 내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3.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쾌투로 팀 승리에 디딤돌이 되어줬다.

사실 정우주의 선발 등판은 예정에 없었다. 3연전 마지막인 28일 일요일 경기에는 에이스 코디 폰세가 등판하기로 예정되어있었지만, 비로 취소되면서 정우주가 선발 등판의 기회를 잡았다.
예상에 없던 깜짝 등판이었지만, 정우주는 자신의 장점인 150km를 훌쩍 넘는 힘있는 포심 패스트볼을 연신 뿌려대며 LG 타자들을 압도했다.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걸치는 하이 패스트볼에 LG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헛돌 정도로 구위가 대단했다.

정우주는 1회 홍창기와 신민재를 연달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를 세웠다. 이후 오스틴 딘에게 유격수 강습 내야 안타를 맞은 뒤 김현수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 위기에 처했으나 문성주를 내야 땅볼로 정리하며 1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가장 긴장이 됐을 1회 위기를 막아내자 이후 정우주는 거침없었다. 2회엔 삼진 1개를 곁들여 타자 3명으로 깔끔하게 막았고, 3회 역시 땅볼 3개를 유도해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4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 첫 타자 오스틴을 외야 뜬공으로 정리한 뒤 마운드를 조동욱에게 넘겼다.

시즌 내내 선발이 아닌 불펜에서 뛰었기 때문에 90~100구 정도를 소화할 수 없는 정우주의 사정상 경기 전 김경문 한화 감독은 정우주가 3이닝 정도만 무난하게 소화해주길 기대했으나 정우주는 사령탑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투구를 선보이며 한화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정우주의 호투 속에 한화는 LG를 7-3으로 제압하고 안방에서 LG가 정규리그 1위세리머니를 펼치는 걸 막았다. 한화가 남은 3경기에서 모두 승리하고, LG가 2경기를 모두 내주면 두 팀은 승률이 동률이 되며 1위 자리를 가리는 타이 브레이커를 치른다.

경기 뒤 “선발 등판을 알게 된 것은 어제(28일)다. 많이 떨리고 긴장도 했지만, 동료들을 믿고 던져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너무 중요한 경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잠도 잘 못 잤다. 그런데 막상경기장 오니까 그런 생각은 안 들더라”고 덧붙였다.
폰세도 정우주에게 고마움을 전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였다. 정우주는 “폰세가 자기 때문에 갑자기 선발로 등판하게 돼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고맙다더라”고 전했다.


주로 불펜 투수로 활약했던 정우주는 이날 경기를 통해 선발로도 대성할 수 있는 재목임을 입증했다. 포심 패스트볼이 돋보이는 정우주지만, 이날은 낙차 큰 커브도 선보이며 선발투수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우주는 팀 선배 류현진의 커브를 배웠다고 했다. 바로 배운 게 아니라, 동기 정현우(키움 히어로즈)를 통해 건너 들었다. 정우주는 “부끄러워서 류현진 선배님께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대신 (정)현우가 류현진 선배님한테 물어본 적 있고, 제가 다시 현우에게 물어봤다”고 설명했다.
이제 정우주의 시선은 한국시리즈로 향한다. 정우주는 “LG를 상대로 한 마지막 결과가 괜찮아서, 만약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좋은 기억을 가지고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포스트시즌에는 아마 불펜으로 나갈 것 같다. 막아야 할 상황이 오면 목숨 걸고 던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