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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사람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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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9 23:04:07 수정 : 2025-09-29 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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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폐 속엔 포도알 같은 허파꽈리들이 수없이 많답니다.

자극을 받거나 날씨가 나쁠 땐 기침이 나기도 하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둥근 뼈의 집을 헤엄쳐다니는 안개의 숨소리,

핏줄들은 힘차게 팔딱거린다.

소금에 절은 바람도 거기선

비틀린 사랑을 배우며 살아온 어느 골방의 불규칙한 안식도

거기 도착하면 흐릿해진 알전구를 바꿔 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인생은 여러 번 바뀌어도

사람의 고향이 몸 속에 있었다니……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침이 나죠?

종이꽃잎들이 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나봐.

 조용한 방에 누워 숨소리를 듣는다. 나의 숨소리. 나의 ‘고향’으로부터 가만가만 길어 올린 것. 헤아릴수록 신기한 것. 언젠가 ‘숨’이란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시에서 나는 몹시 부풀었다 이내 수그러지는, 그리고 금세 다시 부푸는 이것을 두고 “어째서 이런 게 생겨났을까” 새삼 궁구하듯 적은 바 있다. 살아 있다는 사실, 이토록 깨끗한 신비. 단순한 아름다움. 조용한 방에 누워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알 수 있다. 이 소리가 어떻게 방 하나를 가득 메우는지. 육중한 몸을 일으켜 기어이 문을 열게 하는지.

 폐는 슬픔의 장기라고 한다. 폐의 기운이 약해지면 우울이나 불안이 짙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슬퍼지는 한편, 내 안에 나와 더불어 슬픔을 나누는 “포도알 같은 허파꽈리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니 조금 재미있기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침이 나죠?” 일단은, 환절기 감기를 조심하자.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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