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알다시피 4세대 K-팝 걸그룹의 시작은 '에스파(aespa)'와 함께였다.
2020년 팬데믹 가운데 메타버스 열풍 속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오가는 콘셉트을 내세웠던 이 팀은 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앞서 가상 걸그룹의 매력도 보여줬다.
이 팀은 그런데 급작스럽게 K-팝계에 찾아온 '이지 리스닝' 열풍 속에서 오히려 고유성을 더 분명히 하며 멀티버스로 나아갔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K팝 개척사' SM엔터테인먼트 경전의 구약(舊約) 시작이 그룹 'H.O.T.'라면, SM 신약(新約)의 출발은 바로 에스파. K팝 내에서 독자적인 장르를 가리키는 SM의 뮤직 퍼포먼스, 즉 'SMP'(SM Music Performance)의 효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SM의 언약 그 자체다.
무엇보다 에스파에게 '초신성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선공개곡 '슈퍼노바' 등이 실린 정규 1집 '아마겟돈(Armageddon)'에 집약된 SMP를 통해 세계관을 우주로 확장하며 신개지를 마련했다.
에스파가 8월31일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에서 연 세 번째 단독 콘서트 '2025 에스파 라이브 투어 ? 싱크 : 액시스 라인(2025 aespa LIVE TOUR -SYNK : aeXIS LINE)'은 콘서트명처럼 에스파가 그 자체로 중심축('액시스 라인')임을 확인한 자리다.
에스파가 그만큼 화려하고 극적이라? 그런 이유도 있지만 에스파의 음악은 팬덤 '마이'를 끌어들이는데 본령이 있기 때문이다.
카리나의 힙합 댄스곡 '굿 스터프(GOOD STUFF)', 닝닝의 나른한 R&B '케첩 앤드 레모네이드(Ketchup And Lemonade)', 지젤의 트로피칼 댄스곡 '토네이도(Tornado)', 윈터의 팝 록 '블루(BLUE)' 등 네 멤버가 작사 혹은 작사·작곡에 참여한 이 곡들은 멤버들이 점차 음악에 눈떠 이전과는 다른 K-팝 아티스트가 돼 가는 표상을 보여주며 팬들과 연대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콘서트에서 무대를 선공개한 미니 6집 '리치 맨(Rich Man)'(9월5일 발매 예정) 타이틀 곡 '리치 맨(Rich Man)'은 어떤가. 일렉 사운드의 거칠면서도 청량한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노래인데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 자기연민이 아닌 자기애를 담고도 로킹하다. 라이브 밴드의 물리적인 연주 질감과 만났을 때 발산하는 에스파 멤버들의 에너지는, 밴드 사운드의 인기와 유행에 점령당하기보다 더 순수한 K-팝적인 열망의 고유성을 보여준다.
에스파는 이처럼 속수무책이다. K-팝 혹은 자신들의 진부해질 뻔한 성공스토리 플롯을 스스로 벗어난다. 동시에 K-팝의 상상력의 한계를 멤버들의 매력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콘셉트와 메시지와 함께 가는 방안에 대해 언제나 열렬히 고민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에스파의 좌표는 이처럼 특별하다. 이들의 행보를 X축(가로), Y축(세로), Z축(깊이), 즉 3차원의 데카르트 좌표계에 놓아보자. X축은 에스파의 콘셉트, Y축은 이를 상승시키는 멤버들, Z축은 이들에게 깊이를 더하는 마이다. 이 세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한, 현 K-팝 좌표계의 중심축은 언제나 에스파다.
지난달 29일부터 3일 연속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번 콘서트엔 총 3만명이 운집했다. 에스파는 이 콘서트를 시작으로 총 15회 전 지역 1만 석 이상 아레나 규모 월드 투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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