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의 외야수 장진혁은 광주일고 시절이던 2011년 청소년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전국구급 재능이었지만, 그해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단국대에 진학 후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며 4년 내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 39순위로 한화 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다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주전으로 도약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프로 9년차 시즌이었던 지난해 선수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약점인 선구안을 보완하는 대신 타석에서 적극적인 스윙을 가져간 결과 컨택 능력이 향상됐고, 삼진률도 떨어졌다. 원래 보유하고 있던 준수한 장타력도 적극적인 스윙 덕에 빛을 발하면서 프로 데뷔 후 단 3개에 불과했던 홈런이 2024시즌에만 9개나 터져 나왔다. 드디어 주전급 선수로 도약한 한해였다.
2024시즌을 마치고 또 다시 선수생활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한화가 FA 시장에서 선발자원 엄상백을 영입하면서 그의 보상선수로 KT로 이적하게 됐다. 이적 후 KT와의 연봉계약에서는 1억1500만원에 사인하며 데뷔 첫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5월11일에야 1군에 콜업됐다. 이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선발 출장과 백업 출장을 오가는 준주전급 위치에 만족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23일까지 장진혁의 시즌 성적은 타율 0.212(104타수 22안타) 1홈런 11타점.
그랬던 장진혁이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두산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단 한 타석으로 팀에게 승리를 안기며 당당히 주인공에 등극했다.
장진혁은 KT가 0-1로 뒤진 8회 2사 1,2루에 대타로 등장했다. 원래 5번타자로 선발 출장했던 2루수 김상수가 수비 과정에 허리에 불편함을 느껴 4회 수비부터 교체되면서 그 자리는 내야 백업요원 강민성이 메꾸고 있었다.
두산 벤치는 2사 2루에서 4번 타자 강백호가 등장하자 그를 고의4구로 걸렀다. 1루를 채워 수비를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강민성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KT 이강철 감독은 장진혁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두산 벤치도 잠수함 박치국 대신 베테랑 좌완 고효준을 올렸다. 좌타자는 좌완 투수로 막겠다는 심산이었다. 마침 올 시즌 장진혁의 좌완 상대 타율은 0.190(21타수 4안타)에 불과했다. 두산 벤치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야구는 확률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장진혁이 스윙 한 번으로 증명했다. 볼 카운트 1B-1S에서 고효준의 포심이 몸쪽 높은 코스를 찌르고 들어왔다. 공략하기 그리 쉬운 코스는 아니었지만, 장진혁의 배트는 날카롭게 돌았고, 발사각 24.4도, 165.9km의 속도로 115.5m를 날아간 이 타구는 우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역전 3점 홈런으로 연결됐다. 장진혁의 시즌 2호이자 데뷔 첫 대타 홈런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장진혁의 결정적인 한 방에 힘입어 KT는 두산을 3-2로 꺾고 주말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경기 뒤 더그아웃에서 만난 장진혁은 극적인 역전 결승 홈런을 때려낸 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대타로 나가는 상황이 많이 없었다. 그냥 더그아웃에 있기보다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대타로 호출이 됐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몰입이 잘 됐던 것 같다”면서 “대타 홈런을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순간에 홈런을 치는 상상은 해본 적 있다. 막상 현실이 되니까 베이스를 돌 때까지는 아무 느낌이 없다가 수비를 하러 나가니까 조금 실감이 되더라고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16일 만에 선발 복귀전을 치른 KT 소형준은 7이닝 1실점 역투를 펼쳤으나 마운드를 내려갈 때만 해도 패전투수가 될 위기였으나 장진혁의 한 방에 단숨에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게 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시즌 8승(6패 1세이브)째를 신고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승리투수 요건을 부여해준 선배에게 고마워서였을까. 소형준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장진혁을 격하게 포옹했다. 그는 “(소)형준이가 ‘고맙다. 멋지다’라고 말하더라. 감독님은 ‘잘 쳤다. 나이스 배팅’이라고 격려해주셨다”라고 전했다.

경기 도중 들어가 경기 감각이 떨어져있는 선수들은 여러 구종에 대처하기 쉽지 않다. 한 가지 구종을 정하고 들어간다. 변화구 대처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장진혁 역시 직구 하나만 보고 들어갔다. 그는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타격코치님이 ‘빠른 공만 잡자’고 하셨고, 직구를 기다렸다. 마침 몸쪽 높은 코스에 들어오는 걸 빠른 포인트에서 친 게 주효했다”라고 홈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시즌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지만, KT 이적 후 존재감이 적어진 장진혁은 시즌 내내 고민이 많았다고. 그는 “시즌 내내 원하는 스윙이 잘 안 나와서 ‘대체 뭐가 문제일까’라며 고민했다. 스스로에게 집중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 집중을 하면서 좋은 감각을 연습 때 익히다 보니 그게 시합에서 나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KBO리그는 3위 SSG부터 9위 두산까지 가을야구 초대장 3장을 두고 7팀이 경쟁하는 구도다. 장진혁의 홈런 한 방은 이번 주말 3연전 직전 7연승을 달리던 두산에게 홈 3연전 스윕패라는 결과를 가져옴과 동시에 KT의 4위 등극을 이끈 한 방이었다. 장진혁은 “이런 시기에 팀에 보탬이 된 것 같아 다행이고 뿌듯하다. 앞으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오늘 홈런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앞으로의 대활약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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