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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청각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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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21 23:21:13 수정 : 2022-04-21 23:21:12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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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 통화 소리·층간소음 등 스트레스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 들면 고통 커져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휴대폰 통화 소리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요크대학교에서 시행된 연구에 따르면 쌍방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대화보다 전화 통화 소리처럼 반쪽만 듣게 될 때 사람들은 더 큰 짜증을 느낀다고 한다. 대화가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 노출되면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말을 예측하는 존재다. 사람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화기 건너편 상대의 말을 상상하면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옆에서 들려오는 반쪽 대화가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이유다.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섬세하게 음을 구별해 내는 귀를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디오 마니아도 아니다. 소음을 견디는 힘이 약하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사방에서 섞여 들어오면 금세 정신이 멍해진다. 소리에 약한 체질인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직업병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정신과 의사를 업으로 삼고 20년 넘게 살았더니 진료실 밖에서도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주의가 옮겨진다. 듣고 싶지 않은데도 “우울하다, 스트레스 받는다, 짜증 나” 하는 말이 들려오면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정신과 문턱이 낮아져서인지, 아니면 아파트 시공에 문제가 많아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층간소음으로 잠 못 자고 불안에 시달린다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가 늘었다. 층간소음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퇴근하고도 귀가하지 못하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위층이 조용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이도 있었다. 자기 집 안에서도 조용한 구역을 찾아서 옮겨 다니며 잠을 청하고, 주말에도 거실에서 편히 못 쉬고 밖에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소음이 공포라고 말했다.

시각 공해는 커튼을 치면 차단할 수 있지만 벽을 뚫고 넘어오는 소음은 막을 수가 없다. 천장을 덧대거나 두 손으로 하루 종일 귀를 막는 건 눈을 감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층간소음이 불면과 불안증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동한다. 이웃에게 부탁했는데도 줄지 않고, 오히려 보복 소음을 일으킨다고 느낄 때 정신적 고통도 커진다.

자동차 엔진 소리와 공사장 소음, 폭탄처럼 쏟아지는 길가의 음악까지 도시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7년에 발표한 세계 도시의 소음 공해 수준을 보면 중국의 광저우가 1위였다. 서울은 35위, 도쿄는 39위였다. 소음 공해가 가장 적은 곳은 취리히였고 빈, 오슬로, 뮌헨과 스톡홀름이 그 뒤를 잇는 고요한 도시에 꼽혔다.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일수록 청각 스트레스도 작은 것 같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조사 결과였다.

5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심장질환과 뇌졸중의 위험이 커진다. 유럽환경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소음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유럽에서만 한 해 1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당연히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청각 스트레스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조절을 어렵게 만든다. 타인을 관용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떨어뜨린다.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원인에 소음 공해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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