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불굴의 지도자 처칠 연상시켜

“어떤 의미에서 드골보다 용감하다. 전쟁 지도자로서 처칠과 동급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불안’에서 ‘찬탄’으로 바뀌기까지 채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수도 런던이 잿더미가 되어가는데도 “우리는 나치를 쓰러뜨릴 것”이라고 외치며 영국 국민을 독려한 끝에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끌어낸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의 비교는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개전 초기 “코미디언 출신 초짜 대통령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조롱한 국내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머쓱해질 정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3일(현지시간) 오는 14일 발간할 잡지의 겉표지를 온라인 공간에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국기 위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수도 키이우 시민을 ‘영웅’으로 표기한 모습이다. 타임은 “러시아의 암살 위협에도 키이우에 남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을 극찬했다. 이어 그의 원래 직업이 희극인이란 점을 감안한 듯 “찰리 채플린이 처칠로 변모했다”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프랑스가 전쟁터를 떠나고 소련(현 러시아)과 미국은 아직 참전 여부가 불투명했던 1940년 6월부터 1941년 6월까지 약 1년간 처칠의 영국은 홀로 나치 독일과 싸웠다. 히틀러가 여러 차례 협상을 제의했으나 모두 묵살했다. “우리는 결코 힘없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처칠의 대국민 연설 중에서)

2차대전 당시 영국에 처칠이 있었다면 프랑스엔 샤를 드골이 있었다. 물론 일국의 총리였던 처칠과 달리 국방차관에 불과했고 그나마 나치 독일과의 강화를 주장하는 필리프 페탱 내각 출범 이후로는 정부에서 쫓겨난 드골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다. 드골은 프랑스의 항복 직전 영국으로 피신해 망명객 신분으로 대독 항전을 이어갔다.
이번에 미국도 러시아의 침공 후 암살 위협을 이유로 젤렌스키 대통령한테 해외 망명을 제안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기가 싸움터다. 나는 무기가 필요하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타임은 드골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젤렌스키가 수도에 머물기로 한 것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용기 있는 행동”이란 표현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가 드골보다 앞선다는 점을 암시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국내 정치권 및 언론 일각에선 ‘소국 우크라이나가 괜히 강대국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전쟁이 났다’는 식의 책임론이 눈에 띄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코미디언 출신 초짜 대통령”으로 폄하하는 조롱 섞인 발언도 나왔다. 하지만 세계 2위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의 총공세에도 우크라이나가 열흘가량 버티자 이런 반응은 완전히 사라졌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을 칭송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나란히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에게 ‘지지’와 ‘연대’를 표명한데 이어 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그에게 “러시아의 침략에 결연히 맞서 싸우는 대통령님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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