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재일작가 이용덕 “절망 염세에만 빠져 있으면 세계 재창조 없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1-10-07 07:30:00 수정 : 2021-10-06 19:55:21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해와달 제공, ©Renji Tachibana

인쇄 메일 url 공유 - +

많은 한국인 뉴커머(new comer)들이 생활하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이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열리는 극우 단체의 혐한 집회, 역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 츠루하시(鶴橋) 한 가운데에서 마이크를 잡고 ‘츠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킬 겁니다!’라고 외치는 여중생, 극우 단체 혐오 시위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항의(카운터) 데모….

 

“시대가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그는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게 집필 동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설이란 이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대담한 전혀 다른 시도이니까. 이 세계에 대한 철저한 모멸의 표명이고, 심술궂은 풍자를 끊임없이 들이대는 민폐 행위이며, 뒷구멍을 차례차례 들춰내서 떠벌리고 다니는 폭로이고, 양식과 합의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회의이자, 심보 고약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조차 멈출 수 없는 강박이고, 이렇게까지 써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돌파구를 찾아냈을 때 느껴지는 쾌락이니까.

 

지난해 제42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거머쥔, 최근 번역 출간된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이용덕(李龍德)씨의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해와달) 이야기다. 구상에서 집필까지 5년이 걸렸고, 처음 단편으로 쓰려 했다가 이야기가 커지면서 장편으로 몸집을 불렸다.

 

소설은 배외주의와 혐오의 광풍이 휩쓸고 첫 혐한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근미래(近未來) 일본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동성혼 합법화나 부부별성제 등 각종 진보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특별영주자 제도를 폐지하거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생활보호지급을 중지하는 등 재일 한국인만을 철저하게 차별한다.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범죄가 증가하면서 재일 한국인들은 점차 사지로 내몰린다.

 

자이니치(在日) 청년 가시와기 다이치는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선명, 윤신, 태수 등을 한명씩 포섭해 나간다. 이들의 계획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 전모를 드러낸다. 조선 여류 시인 이매창의 시를 좋아하는 이화와 천성 등은 이에 맞춰 ‘귀국 사업’을 통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쳐 좌초 위기를 맞는다.

 

“꼭 명확한 제노사이드나 강제수용소의 재림만이 디스토피아가 아니야. 디스토피아는 지금이지. 말하자면, 역시 인류는 역사를 통해 배운 거야. 이렇게 서서히 퍼져가는, 변명과 궤변만 넘쳐나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독가스 대신 그저 증오를 내뿜어서 공기를 더럽히고, 마이너리티를 질식시키는 이 방법이야말로 녀석들이 배운 새로운 청소법이야.”(402쪽)

 

아쿠타카와상에 빛나는 작가 유미리씨는 이 소설에 대해 지난해 일본 잡지 『문예』 봄호에 실린 대담에서 “배타적 애국주의가 증가하는 일본의 ‘지금’에 던지는 폭탄 같은 소설”, “매우 도발적인 작품”, “문제작”이라고 상찬했다. 제목은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원들이 조선인들을 죽창과 곤봉, 단도 등으로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에서 가져왔다. 작가 이용덕은 왜 ‘폭탄 같은 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추석 전후, 이 작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배외주의와 혐오가 횡행하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했는데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인터넷에는 소수자에 대해 ‘불평을 말하려면 나가라’‘쫓아내자’ ‘분수를 알라(わきまえろ)’ ‘그 녀석들에게는 세금을 쓰지 마라’등 증오 표현이 넘치고 있지요. 배외주의자들에게 이상적인 세계를 이뤄주자는 의도에서 ‘근미래 소설’이라는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소설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다이치, 말보다 행동력이 돋보이는 윤신, 귀화하지 않았지만 한국어도 못하고 자신과 세상을 비관하는 선명, 현실 문제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비정치적인 태수,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는 이화 등 매력적인 자이니치 2, 3세들이 다수 등장한다.

 

“다이치처럼 도덕심보다 합리주의를 우선하는, 말하자면 주인공답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 격’으로 배치하는 걸 좋아해요. 리얼리티를 더해주고 이야기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소설 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인물이면서 어떤 의미에서 가장 특색이 없는 인물인 것처럼 펜을 억제한 건 그것이 ‘이야기의 축’으로 효과적이라는 제 판단입니다.”

 

합리성을 추구하려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다이치 외에도 주요 등장인물에는 자신의 과거나 미안함, 반성 등이 투영돼 있다고, 그는 전했다. 예를 들면 선명에게는 자신의 염세와 비관이, 이화에겐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 시절 열의와 표류가, 태수에겐 옅은 정치의식을 가진 과거의 반성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입니다만, 윤신의 경우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재미 한국인 조승희씨를 모델로 하고 있어요. 만약 조씨가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와 ‘오쿠보 수비대’와 다이치를 만났다면, 하는 가상 하에 만들어 낸 인물이죠.”

 

―보수정당의 청년을 끌어들여 극적인 반전을 시도하는 마지막 결말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왜 여기까지 나아갔는지 생각을 듣고 싶군요.

 

“소설에도 썼습니다만, 어느 특정 소수에 대한 증오가 대중 수준으로까지 번져 갔을 때, 그에 대해 차별을 받는 소수는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요. 압도적으로 수에서 밀리기 때문에 폭력·비폭력의 어느 방법도 기대할 수 없고, 언론에 의한 인권의식이나 정에 호소하는 것도 초기 시기에는 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나머지는 소설을 읽어 주시고 주인공들이 선택한 결론을 판단해 주시길 희망합니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자기희생’을 통해 대중의 눈을 억지로 이쪽으로 향하게 것 외에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결론이었어요.”

 

―이화와 천성 등을 비롯해 일부는 ‘귀국 사업’을 벌이는데, 자이니치 2, 3세 사이에 이런 기류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까지 이뤄진 조총련계 사람들의 ‘북송사업’과 언뜻 겹쳐 보이기도 하고요.

 

“물론 조총련의 ‘복송 사업’ 사례를 많이 참고했고, 그에 관한 자료도 일부 읽었지요. 이화는 그것을 전면에 내건 화신으로, 혹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부적 같은 마음으로 굳이 자신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귀국 사업’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체의 측면에서 보면, 대화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건 전개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는 저의 두 번째 작품(『보답 받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보답 받지 못한다(報われない人間は永遠に報われない)』)에서, 저는 프랑스 심리분석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지문이 없는 글을 집중적으로 썼어요. 그래서 그런 글에 지쳐버렸지요. 세 번째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마치 연극처럼 거의 회화 문장으로 등장인물의 삶의 추이를 알 수 있는 소설을 펴냈고요. 그 자취가 이 네 번째 장편소설을 점령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윤신이나 오쿠보 수비대 등 배외주의와 혐오에 맞선 저항은 어떻게 취재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아직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는 법 정비가 없고 도쿄 신오쿠보 등 코리아타운에서 차별을 선동하는 가두연설이나 괴롭힘의 집단시위가 집중적으로 일어났을 때, 이에 맞서는 항의 단체가 있었습니다(다만, 그 단체 구성원의 대부분은 일본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차별에 반대하는 단체에 대한 르포와 실제로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쓴 책, 인터넷 기사 등을 많이 읽었어요. 이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을 때는 이미 거리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시들어졌고, 실제로 현장을 보러 가도 한두 명 정도에 의한 반한시위에 훨씬 많은 수의 항의 데모와 경찰, 언론이 둘러싼 구도가 돼 있었지요. 물론 그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 태도를 차분히 관찰했지만요.”

 

―한국에서도 배외주의와 혐오의 흐름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코로나19로 더욱 심화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배외주의와 이에 맞서는 흐름은 어디로 갈까요.

 

“유감스럽게도, 권력이 취약계층을 압박해 가는 흐름이라는 것은 잠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비관하고 있습니다. 시류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는데, 시류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변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저는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무리하지 않고 분명하게 차세대에게 전하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희망의 빛이 될 것이라고 에누리 없이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대로 투표합시다. 정말.”

 

요컨대 이용덕의 소설은 배외주의와 혐오가 판을 치는 지금 세계가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체계처럼 보이지만 끝내 재창조될, 매트릭스이거나 그림자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거대한 포효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관과 염세하지 않고 희망을 갖는다면, 끝내 지치지 않는다면.

 

“우리들 재일 한국인이 너무 미워서 차별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도 있었지만, 전력을 다해 그에 맞선 일본 분들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절망이나 염세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신과 무관한 약자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으로 직결되지 않는 인권 활동 등을 위해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확실하게 존재하며, 언제까지나 고루하고 변할 것 같지 않던 사회제도 역시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유려한 외모도 아니었고, 운동 신경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던 것 역시 아니었다. 만약 하나라도 뛰어난 게 있었다면, 1976년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埼玉)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3세 이용덕의 삶은 전혀 달랐을 지도 모른다.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그가 내려간 글, 문장들이었다.

 

“아이 때부터 쓴 글이 칭찬을 받아왔습니다만, 그게 저의 운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좋은 재능이 있었다면 다른 삶도 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다른 재능이 없었어요.”

 

그는 와세다대 제1문학부를 졸업했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4년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의 나이 37세.

 

“저는 37세가 될 때까지 작가에 데뷔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10대 후반부터 많은 문예지의 신인상에 매년 투고를 계속해 왔습니다만, 라고 말하는 범부이죠.”

 

등단 이후 『보답 받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보답 받지 못한다』(2016)로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에, 지난해 첫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로 ‘제42회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본에서도 순문학 작품은 잘 팔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것으로, 저는 최근까지 파견사원을 겸하면서 생활해 왔어요. 젊은 나이에 책이 잘 팔리는 천재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회 속에서 일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야말로, 오히려 쓸 소설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이와 관련, 그는 언젠가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개똥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문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2015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했다.“소설의 인물들은 파멸로 향하지만, 결국 제가 바라는 건 지독한 염세관을 통해 오히려 독자들이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어떤 작가를 참고하거나 롤 모델로 하고 있나요.

 

“많이 있지만, 특히 언급하고 싶은 작가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호프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계획입니까. 

 

“당분간은 중편소설을 쓸까 하고 생각합니다만, 언젠가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단편소설집을 한 권이라도 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잡지 『문예』 봄호에 실린 유미리와의 대담에선 “기본적으로 어두운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통풍이 잘 되고 습도를 낮춰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통풍과 습도가 잘 되는 소설을.

 

‘혹시 묻지 않았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해 달라’고 하자, 그는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거듭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재일 한국인인 저로서는 조국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분들에게 제가 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받습니다…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라도 만약 서점에서 볼 기회가 있으시다면, 꼭 집어 서문만으로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일까. 그가 밝힌 감사의 표현이 예의상의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새로운 절박감으로 다가오는 건. 게다가 소설 첫머리에 쓴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의 구절과 연결시켜 본다면 자못 진지해 지는데. 절박감은 돌연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고 만다. 역시 배외주의와 혐오 앞에 놓인 우리 앞에 쿵, 하고 떨어진.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이 만일 ‘아아,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인은, 정말로 구제 불능의 차별 국가, 차별적 민족이구나’라고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제 붓이 패배했다는 뜻이겠지요. 그게 아니라 ‘아아, 이건 우리나라 한국에서도, 혹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체계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제 붓이 얼마간의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그래서 이번 작품의 한국어판 출간이 저로서는 도발이자 도전입니다. 부디 제 도전장을 받아주십시오.”(2021.10.7)

 

*참고자료

 

-김지영(2015.9.30). 「“개똥같은 세상서 살아갈 힘을 얻는 건 문학이 있기 때문”」.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50930/73906155/1

 

-유미리 이용덕(2020.3). 「記念対談 柳美里×李龍徳「未来への苛烈な祈り」」. 『文藝』, 2020년 봄호. Web河出. https://web.kawade.co.jp/bungei/3432/


오피니언

포토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아일릿 원희 '반가운 손인사'
  • 미야오 엘라 '시크한 손하트'
  • 박규영 '사랑스러운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