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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 대극장 압도하는 연기로 부활

입력 : 2021-07-25 03:00:00 수정 : 2021-07-26 13: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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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올라누스’ 남윤호 인터뷰

훌쩍 영국 유학을 떠난 지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남윤호가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다.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 ‘코리올라누스’. 선동가 세 치 혀에 갈대처럼 움직이는 민중을 향한 비웃음과 오만한 엘리트를 향한 냉소를 감추지 않는 문제적 작품이다. 대문호의 유산이지만 우리에겐 낯선 이 작품에서 남윤호는 고결하나 오만하고, 용맹하나 지혜롭지는 못했던 고대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발성부터 남다른 배우로서 탄탄한 기본기와 인물 해석이 돋보이는 열연이었다. 

 

서울 공연을 마치고 8월 진주 공연을 앞둔 남윤호는 “개막 공연 때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무대에서 극을 잘 구현해내고 저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코리올라누스’라는 인물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칠까가 좀 궁금했다면 궁금했다”고 오랜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 공연 커튼콜때는 끝까지 감정을 잘 지키고 마무리하려 했는데 촌스럽게 울컥했어요. 무대가 아주 그리웠고 관객이 기립박수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큰 여정을 끝낸 느낌이 들어 후련하면서 감동을 했습니다. ‘내가 무대가 그리웠구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연출을 맡은 양정웅 역시 남윤호와 특별한 사이다. 그가 이끄는 극단 여행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페리클레스’ 등 셰익스피어 대표작을 함께 작업했다. 여러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한 양정웅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는 영국 바비칸 센터와 셰익스피어 글로브 초청 공연까지 한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으며 한동안 연극판에서 떠나있다가 이번 작품으로 5년 만에 남윤호와 함께 무대에 다시 돌아왔다.

 

“(출연 제안을 받고)5초도 고민하지 않았어요. 연출님이랑은 너무 잘 아는 사이고 ‘코리올라누스’도 워낙에 배우로서 언젠가는 한 번 만나봤으면 싶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LG아트센터’라는 무대까지 세 박자가 들어맞는 상황에선 고민할 이유가 없어서 바로 ‘감사합니다’고 수락을 했죠.”

 

 

연극 ‘코리올라누스’에서 “운명아. 올테면 오라지요”라고 외치며 스스로 비극적 운명을 선택하는 고대 로마장군 코리올라누스를 열연한 배우 남윤호. “올해 서른 일곱 나이에 (대작을)끌고 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심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건 연습 밖에 없었다. 무작정 매달렸다”고 작품 준비 과정을 떠올렸다. 이재문 기자

성벽 밖에서는 ‘볼스키’라는 강적이 위협하고 안으로는 민주주의가 태동하던 격동의 기원전 5세기 로마가 배경이다. 양정웅 연출은 차가운 흑백의 지하 벙커 무대에서 총을 든 전사들, 확성기를 든 선동가들이 격돌하는 현대적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원작 변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찾아낸 고대 로마 장군 이야기로 셰익스피어가 써내려간 영웅비극을 원형 그대로 되살리면서 동시대성을 부여한 것은 연출력의 승리다. 각색에도 참여한 남윤호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각색하고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연출도 같은 생각이셨다”며 “(칼 대신 총이 등장하는 무대였지만)대사에는 원문 그대로 칼을 쓰고 ‘총’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단어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현대 의상에 현대 소품이 나오는 무대지만 대사는 최대한 셰익스피어 원작에 가깝게 했습니다. 그래서 배우 된 입장에서는 도전 아닌 도전이었어요. (원전대로만 하다간) 자칫 잘못하면 정말 대하사극처럼 거부감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TV 드라마처럼 말을 풀어서 하면 셰익스피어가 써놓은 시적 운율 같은 맛이 다 날아가 버리니까 적정한 선을 찾는 게 연습을 하면서도 가장 큰 숙제였어요. 연출님도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스타일리쉬한 미쟝센이라든가 이미지보다도 언어적인 부분에 초점을 훨씬 더 많이 맞춰주셨고 그 결과물이 이번 서울 공연입니다.”

 

LG아트센터 역삼 시대 마지막 작품인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한 장면. 용맹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엘리트이지만 오만함과 시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몰락하는 영웅 비극이다. LG아트센터 제공 

남윤호는 “셰익스피어가 500년 전에 쓴 작품인데 그 이야기는 또 기원전 500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도 지금 삶이랑 그렇게 동떨어져 있지 않아 보이는 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지금 이슈인 키워드를 애드립성으로 끌어오지 않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객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연 시간이 세시간을 훌쩍 넘는 대작 주인공으로서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자나 깨나 달달 외우는 것만큼 인물 분석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여러 판본의 코리올라누스 대본만 여섯권을 읽고 로마사,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등 코리올라누스가 등장하는 어지간한 책은 모두 찾아 읽어봤다. “모두 열여섯권쯤인데 열심히 찾아서 정말 공부를 했고 그것만이 그냥 살길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4년 만의 복귀작인 데다 LG아트센터 역삼 시대 마지막 작품이면서 양정웅 연출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누구여도 부담이 적지 않은 무대일 수밖에 없다. “사실 ‘괜찮을까. 이게 될까’ 스스로도 의심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만으로 제가 올해 서른일곱인데 그 나이에 이걸 끌고 나갈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들었는데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연습밖에 없어서 무작정 매달렸어요. 연습실에 제가 불 켜고 들어온 적도 많았어요. ‘연습만이 살길이다. 그리고 공부만이 살길이다.’”

 

흠잡기 힘든 무대였지만 ‘새로운 시각이 아쉬웠다’는 감상도 나온다. 특히 민중과 엘리트 사이에서 셰익스피어가 택한 양비론을 고스란히 따라갔다. “각색할 때부터 생각한 문제이고 드라마투르그인 이현우 선생님도 ‘이 작품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로 잘못하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원작을 처음 읽고 난 후 ‘과연 나는 누구 편에 서야 하는가’라는 혼란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이 작품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멋대로 누군가에게 힘을 더 실어서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것보다 공정하게 원작이 쓰인 대로 한번 가보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분명히 아쉬운 분도 계실 테고 불쾌하신 분도 계셨을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답을 드리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고 코리올라누스를 연기할 때만큼은 그가 옳다고 100% 확신을 가지고 무대에서 움직이려고 노력을 했어요.”

 

2012년 데뷔인 남윤호는 이번 작품으로 배우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훨씬 더 단단하고 깊어진 연기로 지난 4년을 꽉 채워 보냈음을 짐작게 했다. 그는 “어쨌든 네살을 더 먹었고, 영국에서 혼자 보낸 시간이 워낙 많다 보니 축적된 고독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영국에서 공연을 250여편 정도 열심히 봤는데 어떤 수업보다 값진 시간이 됐다.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나 대하는 마음도, 제 삶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데뷔 후 이렇게 칭찬을 많이 들은 적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는 더, 더 잘해야죠. 좋은 작품이 세상에는 너무 많으니까 더 좋은 실력으로 더 좋은 작품을 찾아가야죠. 매체 출연이요? 기회만 된다면 영화도 하고 싶고 드라마도 해보고 싶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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