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증거의 요지만 요약해 설명하는 서증(서류증거)조사 방식에 반발하며 또 다시 재판부에 항의했다. 재판부는 4회 기일 연속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임 전 차장 측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는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임 전 차장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선 서류 증거를 법정에서 확인하는 절차인 서증조사가 예정돼 있었으나, 임 전 차장 측이 서증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오전 재판이 공전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지난달 15일 열린 공판부터 계속해서 서증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임 전 차장 측은 검사가 증거서류 전부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서증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판부는 현재 요지만 낭독하는 방식으로 서증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292조에는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같은 조항엔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내용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예외도 있다. 증거서류 모두 낭독이 원칙이지만, 재판장 판단에 따라 요지만 낭독하는 것도 가능한 셈이다.
이날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이 검사가 신청한 증거서류에 대한 조사를 ‘요지 고지’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가상의 수능시험 문제가 있다면 다들 ‘위반한 증거조사’라는 보기를 선택할 것”이라며 “법에 위반된 걸 맞는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은 “증거조사 재판 방식에 대한 건 이미 재판장이 말했으니 예정된 대로 증거조사를 먼저 시행한다. 30분이 허비·지연된 것에 대해 필요한 절차 문제는 생략하겠다”고 했으나, 변호인은 “상당 부분은 이야기를 할 것인데도 (요지 고지 방식을) 밀어붙인 그 부분에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은 “알겠습니다. 재판장의 진행이 잘못 됐네요”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후 서증조사가 진행됐으나, 검찰 측 서증조사에 대해 변호인이 계속해서 이의 진술을 하자 재판이 잠시 중지됐다. 휴정 후 돌아온 재판장은 “개별 증거서류 내용도 방대하고, 이 사건의 성질에 비추어 볼 때 핵심적인 내용, 즉 요지 고지에 따른 증거조사가 적법하다”며 “이의 신청은 이의 없음으로 기각한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 측은 지난달 15일 열린 재판부터 4회 기일 연속으로 서증조사 방식을 문제삼고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재판에서 변호인은 “검사가 서류를 낭독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된다면 매번 이의를 제기하면서 형사소송법상 원칙에 따라 발언하겠다”고 했고, 실제 이에 따라 계속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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