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지 않는 제도 개선” 촉구
법조계 “선택적 적용” 비판 나와
울산 선거개입 등 靑 수사 놓고
“강성 지지층 의식 행보” 시각도

박범계(사진) 법무부 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자신이 발의했던 피의사실 공표 처벌 강화 법안까지 소환하면서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 의지를 거듭 밝혔다. 하지만 박 장관을 비롯한 여권이 지난 정권을 겨냥한 ‘적폐청산 수사’ 당시 난무했던 피의 사실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대신 방조하거나 정치적 공세로 활용했던 점을 들어 일각에선 ‘자기 반성부터 하지 않고 피의사실 공표 문제마저 내로남불’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의사실 공표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떠오른다”며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는 제도 개선을 이루자”고 말했다. 조국 사태 당시에 이어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다시 점화한 것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청와대의 ‘기획 사정’을 의심할 만한 수사 내용이 최근 잇따라 보도된 데 따른 것이다. 박 장관은 지난 6일 피의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며 진상 파악을 지시한 뒤 거듭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후 대검찰청은 관련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에 진상조사를 해 보고하도록 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국민의 알권리 문제와 연관된 피의 사실 공표와 관련한 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여권에 불리한 수사에만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조차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 관련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의 피의사실 공표, 적폐수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사건 조사의 피의사실 공표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법무부를 비판했다. 조 의원은 “(임 연구관이) 감찰 내용을 공개해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법무부가 득달같이 감찰조사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 편과 저쪽 편의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결과 아닌가”라며 “전 정권의 적폐수사 과정에서의 피의사실 공표는 착한 공표이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수사 과정에서의 공표는 나쁜 공표인가”라고 지적했다.
임 연구관은 조 의원의 비판에 대해 “오보 대응을 위해 감찰부에서 공개하기로 한 최소한의 정보를 담벼락에 소개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여권의 강성 지지층의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기소에 이어 ‘월성 원전’ 사건과 ‘청와대발 기획사정’ 등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에 대한 불편한 인식이 피의사실 공표 제도 개선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처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수사 내용 보도 관행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공보 자체를 꽁꽁 막은 뒤로는 피의자만 가장 혜택을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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