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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활용 ‘고용 없는 성장’… 화이트칼라 ‘데스노트’ 오른다 [탐사기획 -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관련이슈 탐사기획 -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입력 : 2020-06-02 06:00:00 수정 : 2020-08-05 16: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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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기자가 쓰는 일자리 미래 / 0.1초만에 기사작성 뚝딱… ‘똑똑한 AI’ 인간 대신한다 / 단순 작업 넘어 고숙련도 작업 척척 / 4차산업 기술로 사람 일 대체 가속 / 일자리 최대 50% 4차산업 기술로 대체 / 경영·회계·경리 사무원 등 가장 큰 타격 / 네이버, 현대차보다 시총 두 배 높지만 / 직원 수 20분의 1… ‘저비용 고효율’ 주목 / 중숙련도 일자리 고용 감소 전망 나와 / 새 직업 생기지만 총 취업자의 4% 불과 / 고숙련 일자리 위험도 낮지만 안심 못해 / 전문가 “마찰적 실업 충격 최소화 관건”

그? 그녀? 아니, 사람은 아니니까 ‘그것’이 좋겠다. 그것은 듣던 대로 영리했다. 엑셀 파일을 건네받은 그것은 0.1초도 안 돼 777자의 기사를 뽑아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직업별 AI 대체 확률' 보고서에서 AI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총 423개의 일자리 중 AI 대체 확률이 가장 높은 상위 5개의 일자리는 인터넷 판매원 (99.0%), 통신서비스 판매원 (99.0%), 사진인화 및 현상기 조작원 (99.0%), 텔레마케터 (99.0%), 관세사 (98.0%)로 조사되었다.

 

반대로 가장 영향을 덜 받는 일자리 다섯개는 장학관ㆍ연구관 및 교육 관련 전문가 (0.0%), 전문 의사 (0.0%), 영양사 (0.0%), 보건의료관련 관리자 (1.0%), 교육 관리자 (1.0%)로 나타났다. 전체 일자리 중 대체 확률이 70%가 넘는 일자리의 수는 160개로 모두 38%에 달했다.

 

직업군별로 살펴보면, AI에 영향을 받는 직업군의 대체 확률 평균은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 (81.0%), 판매 종사자 (81.0%), 사무 종사자 (80.0%), 단순노무 종사자 (76.0%),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 (71.0%),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65.0%), 서비스 종사자 (50.0%),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26.0%), 관리자 (17.0%) 순서로 조사되었다.

 

AI 대체 확률이 50% 미만인 직업군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와 관리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 직업군에 속한 일자리 중에서도 관세사 (98.0%), 회계사 (96.0%), 세무사 (96.0%), 감정평가 전문가 (95.0%), 손해사정인 (95.0%)은 높은 대체 확률을 보여주었다.

 

이 기사는 이준환 서울대 교수가 개발한 기사작성 인공지능(AI)에 의해 작성됐다. 세계일보는 2018년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를 쓴 김건우 카카오모빌리티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당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로부터 423개 직업의 대체 확률 원본 자료를 받아 AI에게 넘겼다. AI는 자기 때문에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인간의 직업에 대해 보란 듯이 기사를 써냈다.

 

비록 원인 분석이나 전문가의 설명이 없는 단순한 형식이지만 ‘조사되었다’, ‘나타났다’, ‘달했다’처럼 다양한 서술어는 물론, 부족하다는 느낌을 전달할 때 쓰는 ‘불과했다’는 표현도 구사했다.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는 이미 눈앞에 와 있다. 이는 영국 옥스퍼드대 칼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쓴 논문과 미국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의 보고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의 연구 등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LG경제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이 미래 일자리에 대한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연구 방법에 따라 현재 일자리의 20∼50%가 4차산업 기술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직업에 따라 충격의 정도는 차이가 크다. 김건우 이코노미스트의 연구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는 77%가 저위험군 일자리다. 반면, 사무 종사자는 86%, 판매 종사자와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는 각각 78%와 59%가 고위험군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무 종사자에는 경영 관련 사무원, 회계·경리 사무원, 비서·사무보조원 등이 있다. 전통적인 ‘화이트칼라’ 일자리다.

◆‘화이트칼라’가 위험하다

 

맥스 테그마크 MIT 교수는 그의 책 ‘라이프 3.0’에서 AI의 위협을 이렇게 설명한다.

 

“산업혁명 시기에 우리는 인간의 근육을 어떻게 기계로 대체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근육보다 정신을 더 써서 돈을 더 많이 받는 일자리로 옮겨갔다. 블루칼라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로 대체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두뇌를 어떻게 하면 기계로 대신할 수 있을지 궁리해내고 있다.”

 

AI를 산업혁명 때의 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건 인간의 보루라고 여겼던 정신활동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하지만 아직 이런 전망을 피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기계화의 물결에도 일자리는 계속 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취업자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3년부터 지난해까지 취업자가 전년보다 줄어든 건 단 네 차례뿐이다. 오일쇼크가 덮친 1984년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신용카드 대란이 벌어진 2003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인 ‘사건’이었을 뿐 산업구조의 변화로 일자리의 총량이 주는 일은 없었다. 전체적인 추세로 보면 매년 36만명씩 취업자가 늘었다.

 

이는 기술에 의해 노동력이 대체되는 효과보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을 덜 투입하고도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효과를 얻게 된다”며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계속 발전했음에도 고용이 늘어난 것은 노동력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필요한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고용계수(10억원의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데 필요한 고용자의 수)의 하락 속도도 제조업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2005년 13.46이던 전체 산업 고용계수는 2017년 4.22로 하락했다. 하지만 기계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제조업에서는 같은 기간 9.77에서 1.88로 떨어졌다. 전 산업 중 74%의 고용을 담당하는 서비스업에서도 18.63에서 6.68로 낮아졌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얼마나 새로 생겨나나

 

물론 새로 등장하는 직업도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고용정보원이 펴낸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직업 종류는 1만6891개다. 이 가운데 2012년 이후 8년 동안 새로 생겨난 직업이 5200여개에 달한다. 유튜버와 같은 미디어콘텐츠창작자, 드론 조종사, 블록체인 개발자, AI 엔지니어 등 4차 산업혁명 등 사회변화에 따른 신생직업도 270개나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신생직업이 사라지는 직업을 대체할 만큼 충분한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표준직업분류는 대분류부터 세세분류까지 5단계로 직업을 구분한다. 이 중 통계청이 공개하는 직업별 취업자 수는 소분류까지다. 소분류로 나눈 직업을 취업자 수로 나열했을 때 20위까지는 매장 판매 종사자, 작물 재배 종사자, 조리사 등 전통적인 직업이 포진해 있다. 21번째 가서야 ‘컴퓨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등장한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총 32만54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703만8400명)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간호사, 비서 등 전통적인 직업이 이어지다 다시 35번째에 통신 관련 판매직이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 판매원, 단말기 판매원 등이 포함된 이 직업군에는 21만5000명, 전체 취업자 수의 0.8%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소분류 직업군 취업자 수를 다 더해봐도 107만3200명, 전체의 4%를 넘지 않는다.

 

◆네이버 시가총액 현대차의 2배… 직원은 20분의 1

 

전통적인 제조업과 인터넷 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와 네이버를 비교해도 그렇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직원 수는 7만32명(기간제 근로자 포함)이다. 2014년 6만4956명에서 2016년 6만7517명, 2018년 6만9402명으로 늘다가 지난해 7만명을 넘어섰다. 연평균 6∼7%의 증가율이다.

 

네이버의 상황은 다르다. 네이버의 직원 수는 2014년 2346명에서 2016년 2693명, 2018년 3585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3492명으로 줄었다. 네이버의 직원 수는 현대차의 20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은 현대차의 2배에 달한다. 최근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안에 입성한 카카오의 직원 수는 이보다 더 적은 2701명이다. 직원 1명당 매출액을 단순 비교하면 현대차의 경우 1명당 1500억원, 네이버는 1800억원 규모다.

 

미국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1964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기업이던 통신회사 AT&T는 당시 직원 수가 75만8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직원 수가 7만여명에 불과하다.

 

◆중간 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의 질도 걱정해야 할 부분이다. 미래 일자리 연구들은 대체로 고용 감소가 ‘중간 일자리’에서 벌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전망 2019’를 보면 2006년 이후 10년간 중숙련도 일자리비율(각종 사무직, 기계조작원 등)이 줄어든 국가는 30개 조사국 가운데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29개국에 달했다. 고숙련도와 저숙련도의 일자리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증감이 달랐다.

중숙련도 일자리가 가장 크게 줄어든 국가는 그리스(-12.7%포인트)였으며, 오스트리아(-9.2%포인트), 덴마크(-8.4%포인트) 등도 감소율이 높았다. 우리나라도 중숙련 일자리가 6.1%포인트 감소하며, OECD 평균(-5.3%포인트)보다 높았다. 고학력자가 고소득을 누리는 고숙련 일자리와 저학력자가 낮은 임금을 받는 저숙련 일자리로 양극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는 “AI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더라도 저숙련 일자리는 (비용효과를 따져) AI를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는 잡일 처리 영역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AI의 뒷심부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로봇 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은 계산, 암기 등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언덕이나 산에 비유해 ‘인간 능력의 지형도’라 불렀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 지형도에 서서히 물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가 발달할수록 수위가 올라가 인간은 잠기지 않은 봉우리로 이동해야 한다. 고숙련 일자리도 직업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사작성 AI가 국내외 언론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지형도의 수위가 많이 차올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생산성, 고용, 직업에 미치는 로봇의 영향’ 보고서에서 로봇은 “노동 행위를 대체하는 것이지, 직업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일종의 동료로서 사람의 일을 덜어줄 뿐이란 이야기다. 그 예로 로봇 밀집도 최상위권인 한국과 독일의 실업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을 들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마트 계산원이 갑자기 구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듯 마찰적 실업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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