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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빚어낸 ‘욕망의 화신’ 바그너의 민낯

입력 : 2019-12-14 03:00:00 수정 : 2019-12-13 19: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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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스타일 확 바꿔버린 ‘악극’ 창시 / 스펙터클한 무대?음악… 관객 사로잡아 / 삶도 음악만큼 드라마틱하고 모순적 / 돈에 탐닉하고 수많은 염분 뿌린 난봉꾼 / 권력자에게는 머리 숙이는 처세의 달인 / 히틀러에 영향 사후에도 반유대주의 비난 / 희귀한 1차 사료 모아 삶의 날것들 담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도 논쟁 중에 있는 그의 복잡한 인간성과 끝없는 욕망, 그리고 천재적인 음악성을 동시에 조망해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은 네델란드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공연 장면이다.

끝없는 욕망과 엄청난 재능이 결합하면 어떤 인간이 태어나는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인간, 오늘날 영화음악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에 관한 얘기다. 몇몇 천재의 업적은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바그너는 더욱 그렇다. 바그너가 만든 악극은 지금도 꽃피우고 있다. 오페라의 종래 스타일을 바꿔 새롭게 내놓은 장르인 뮤직드라마 ‘악극’은 당시 초대박을 터뜨렸다. 시각적인 스펙터클과 강렬한 음악을 동시에 선보임으로써 그야말로 관객의 넋을 빼놓았다. 바그너의 악극은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인 영화, 특히 스펙터클한 힘을 가진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가 개척한 ‘유도동기’(특정 인물이나 환경에 테마 선율을 부여함으로써 그 선율이 연주되면 대상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현대 영화음악의 기틀이 되었다. 작곡 당시에는 즉흥적이고 전위적인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속칭 ‘또라이 음악’이라고 따돌림당했으나,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친숙해졌다.

자신을 좋아하는 관객을 바꾸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바그너에게는 그럴 재능이 충만했다. 마지막 악극 ‘파르지팔’을 작곡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온갖 감정을 음악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바그너의 아이디어가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래서 그는 악기를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관현악이 빚어내는 음색이 신비롭게 들리도록 했다. 한 예로 그는 현악기의 벨벳 효과 위에 관악기의 화음을 더함으로써 마치 은은한 빛을 받으며 공중을 부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파르지팔은 관현악의 승리였고, 일흔을 바라보는 작곡가에게는 희열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간 바그너를 증오했던 니체조차도 음악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드뷔시는 바그너의 관현악 기법을 가리켜 “안에서부터 빛이 나온다”고 평했다. 바그너를 욕하면서 질투했던 스트라빈스키도 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제했다.

오해수/풍월당/3만5000원

바그너의 삶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드라마틱하고 모순적이었다. 그는 낭만주의자이면서 기회주의자였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면서 돈에 탐닉했으며, 복잡하고 모순된 삶은 부풀려지고 왜곡되었다. 아무 대책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독촉에 시달리면 야반도주를 밥먹듯이 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을 지원해주지 않은 이에게는 악담을 퍼부었다. 천재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 역시 난봉꾼의 기질을 보였다.

바그너는 여성을 ‘인생의 음악’이라고 치켜세웠고, 여러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그들 중 바그너의 삶에 영향을 준 이는 첫 아내 민나와 두 번째 아내 코지마였다. 그는 침상이 아닌 책상에서 ‘인간성에 있어서 여성다움에 관하여’를 쓰던 중에 숨졌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는 여성에게 감사 표시를 한 셈이다. 그가 쓰다 만 글은 한 문단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였다. 마무리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여성 해방의 과정은 황홀한 몸부림하에서만 진행된다. 사랑은 비극이다.” 과연 화려하고 다채로운 애정 드라마의 피날레답다.

바그너는 드레스덴 시민 봉기를 주도했던 당시 좌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권력자에게도 머리를 조아렸다. 또 유대인을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당대의 유대인 혐오 풍조에 힘을 보탰지만, 친한 유대인과는 끝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이런 점에서 ‘처세의 달인’ 바그너는 주로 자기 안으로 침잠해 작품을 쓴 낭만주의의 여느 거장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맹렬 팬으로서 음악을 정치에 이용한 히틀러 때문에 바그너는 사후에도 비난에 시달렸다. 실제로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글을 쓰기도 했던 바그너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진심이었다기보다는 자신의 기회주의를 포장하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를 비판하는 시점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작가로는 드물게 바그너의 전기를 균형 있고 심도 있게 묘사했다. 바그너에 대한 희귀한 1차 자료를 토대로 썼기에 생생한 바그너의 날것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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