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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함대전·전차 경주… 장엄한 감동과 마주서다

입력 : 2019-08-19 01:00:00 수정 : 2019-08-18 20: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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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감동 되살린 뮤지컬 ‘벤허’ / 2017년 초연 가다듬어 다시 무대로 / 뮤지컬 속의 벤허 한층 입체적 진화 / ‘전차경주’ 회전 무대로 박진감 살려 / 대사 줄이고 노래 29곡으로 확 늘려
뮤지컬 ‘벤허’는 스펙터클한 무대 속에 고난과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는 유다 벤허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은 로마병사들의 깃발춤 장면(왼쪽)과 벤허와 메살라가 벌이는 전차경주 대결 모습. 뉴콘텐츠컴퍼니 제공

가로·세로 각 14m 남짓한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장대한 스펙터클이 놀랍다. 볼거리만 요란하다면 공허했을 무대는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라는 오랜 주제와 귀에 꽂히는 음악으로 꽉 채워졌다. 뮤지컬 ‘벤허’ 이야기다.

국내에서 서력 기원 시대 예루살렘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만드는 건 낯선 도전이다. 더욱이 1959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걸작 영화 ‘벤허’가 만든 그림자는 아직도 크다.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신이여, 정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나이까”라는 오만하나 수긍할 만한 소감을 남겼다. 현대 할리우드는 2016년판 벤허를 만들었으나 전작 후광을 벗어나는 데는 한참 못 미쳤다.

로마병사들의 깃발춤 장면.뉴콘텐츠컴퍼니 제공

그런데도 세상 빛을 본 뮤지컬 벤허는 2017년 초연을 한층 가다듬은 재연이다. 해상 함대전과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전차경주 등 무대 스펙터클은 영화 벤허에 빚을 졌지만, 내용은 1880년 작인 루 월러스 원작소설에 한층 충실하다. 남북전쟁 때 북군 군사재판장으로 활약했던 법률가 루 월러스가 멕시코주지사 시절 탈고한 원작 벤허는 성경에 상상을 더한 소설이다. 로마시대 기독교가 어떻게 압제를 견디며 지상에 퍼질 수 있었는지 실감나게 예수 당대 예루살렘과 로마 군상을 그렸다.

주인공 벤허는 로마제국 식민지인 유대의 유서 깊은 왕족 가문 왕자다. ‘벤허’는 ‘허 가문의 아들’이란 뜻이며 집안사람들은 ‘허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원작, 영화와 뮤지컬은 세부 내용에서 각자 길을 걷는다. 우선 뮤지컬은 벤허와 숙적 메살라 사이 극적 전개를 강화하기 위해 원작에선 전 총독의 아들이었던 로마인 메살라를 벤허 가문에서 거둬 키운 죽은 병사의 아이로 설정을 바꿨다.

벤허와 메살라가 벌이는 전차경주 대결 모습.뉴콘텐츠컴퍼니 제공

또 영화는 메살라가 전차경기에서 자멸하고 이제는 ‘한센병’으로 불러야 할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딸이 기적으로 치유돼 벤허 일가가 행복을 되찾으면서 끝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찰턴 헤스턴이 보여준 벤허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릿빛 피부의 강인한 사나이다.

영화와 달리 원작과 뮤지컬 속 벤허는 한층 더 입체적이다. 섬세한 소년이었던 벤허는 가문이 풍비박산 나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벤허의 적은 도움이 간절한 순간 등 돌린 메살라도 있지만 실상 로마제국이다. 로마는 유서 깊은 명문 아리우스 일족 상속자가 된 벤허에게 호의호식으로 대하며 제국 일원으로 포섭하나 벤허는 제 뿌리를 끝내 잊지 않는다. 결국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벤허는 가문 몰락 뒤편에 막대한 재산을 갈취하기 위한 로마총독들의 탐욕이 숨어 있는 걸 알게 된다.

전차경주 우승으로 로마를 꺾은 유대민족 영웅이 된 벤허에겐 가문 복수와 가족 치유가 끝난 후에도 민족 독립이라는 무거운 짐이 남아 있다. 유대 독립군은 벤허에게 “예수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 싸우자”고 요구한다. 벤허는 민족 운명을 놓고 고뇌 끝에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에게 “예루살렘아, 칼을 들어라”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답을 구한다. 그러나 죽음을 통한 부활과 용서를 통한 구원을 깨달은 벤허가 어떤 삶을 사는지 뮤지컬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초연 때부터 호평받았던 무대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영상·조명과 결합한 무대는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했던 로마 갤리선 내부를 실감나게 구현했다. 가장 기대가 컸던 전차경주 장면 역시 실물 크기의 전차와 회전무대가 결합해 충분한 박진감을 전했다. 벤허와 메살라 대결에서 영화는 패색 짙어진 메살라가 벤허 전차를 공격하다 자멸한 것으로 묘사된다. 원작은 “벤허가 왼쪽으로 전차를 살짝 틀면서 철이 씌워진 굴대 끝으로 메살라 바퀴를 찍어 부수어 버렸다”고 적고 있다. 뮤지컬에선 그저 회전무대 반대쪽에서 메살라 전차가 뒤집히는 것으로만 묘사한다.

초연 때 “대사로 진행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늘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뮤지컬 벤허는 이번 재연에선 무려 14곡을 늘려 총 29곡을 들려준다. 덕분에 긴 공연이 빠르게 진행된다. 메살라의 ‘나 메살라’, 퀀터스의 ‘생존의 법칙’ 등 각 캐릭터를 대표하는 노래가 고루 배치됐는데 그중에서도 에스더의 ‘그리운 땅’이 빼어나다. 이날 공연에선 린아가 에스더 역을 맡아 빼어난 가창력을 보여줬다.

벤허 역을 맡은 카이 역시 노예에서 로마 귀족가문의 상속자, 유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써나가는 성서시대 주인공 역을 집중력 있게 소화했다. 등장 여성이 딱 3명인 남성적 무대인데 앙상블 26명이 1부에선 로마병사의 깃발춤을, 2부에선 궁중 무희의 밸리댄스 등을 선보이며 수준급 무용실력을 보여준다.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10월 13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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