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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문젠데”… ‘피의사실 공표’ 놓고 충돌한 검·경

입력 : 2019-06-23 10:00:00 수정 : 2019-06-23 09: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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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수사기관 관행 지적 끊이지 않아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當)하여 지득(知得)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대한민국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끊임 없는 신경전을 벌여온 검찰과 경찰이 최근 난 데 없이 피의사실 공표를 놓고 충돌했다. 선공을 당한 쪽은 경찰이지만 검찰 역시 피의사실 공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일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의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이 경찰관 2명 입건하자 경찰 반발

 

검·경의 이번 갈등은 울산에서 불거졌다. 검찰이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 대장과 팀장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입건해 소환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울산경찰청은 지난 1월 위조 약사면허증을 토대로 약을 지어준 남성을 구속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검찰이 이를 피의사실 공표로 본 것이다. 검찰은 경찰이 낸 또다른 자료 역시 문제 소지가 있으니 시정하라는 공문도 보냈다고 한다. 이에 경찰에서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주로 ‘공보규칙과 판례에 따라 범죄예방 등의 목적으로 피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배포한 자료까지 피의사실 공표라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보복 수사’란 주장도 나온다. 이번에 입건된 광역수사대장은 2년 전 울산지검 검사가 연루된 ‘고래고기 환부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다. 당시 경찰이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 유통업자에게 압수한 고래 고기 27t 가운데 21t을 울산지검 소속 한 검사가 해당 유통업자에게 다시 돌려줬다’고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검·경 갈등으로 번진 바 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경찰 망신주기’를 하려 한 것이란 추측도 있다. 고래고기 환부 사건 외에도 울산에서는 얼마 전 과거 경찰의 울산시장 측근 비리 수사 논란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찰만 문제삼는 건 내로남불”...검찰 비판 목소리도

 

사실 경찰보다는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로 논란이 된 경우가 많았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증거인멸 의혹 사건 관련 피의사실이 연일 중계되다시피한 게 대표적인 예다.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이나 구체적인 증거인멸 정황 등 검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여과 없이 공개됐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뉴시스

기업 수사뿐만 아니라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주요 과제가 된 일명 ‘적폐청산’ 수사나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 등 굵직한 수사들에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관행처럼 반복돼 왔다. 이런 관행으로 피의자들이 판사 앞에 서기도 전에 ‘여론재판’에서 피의사실이 기정사실화된 탓에 수사선상에 올랐던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이 때문에 울산 검찰의 이번 입건이 ‘내로남불’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피의사실을 유출했는데도 문제 삼지 않았다”며 “이게 내로남불이 아니면 뭐냐”고 꼬집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 347건 중 검찰이 기소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준 불명확해 문제… 검·경 합의 필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원칙에 위배되는 피의사실 유출로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취지의 지휘 서신을 검찰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번 일이 논란이 된 뒤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협의를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그간 관례처럼 이어져온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손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피의사실 공표가 사문화된 조항처럼 여겨졌는데 검·경이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 아래 법을 위반해온 게 맞다”며 “차라리 이 기회에 이번 사건이 기소로까지 이어져서 법원의 판결을 한 번 받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인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수사권 조정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를 들고 나온 건 분명 의도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 변호사는 이어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외국 사례들처럼 피의사실 공표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거나 관련 위원회 등을 만들어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사진=연합뉴스· 세계일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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