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통학차량의 안전 규정을 강화한 ‘세림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무색하게 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 양천구의 한 태권도장에 다니는 7살 남자아이가 관장의 확인 소홀로 50분간 통학차량에 갇혔다가 행인이 발견하면서 구조됐다. 소식을 전한 SBS는 관장이 아이 부모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뒤늦은 부모 항의에 아이가 차에 갇혔던 시간을 줄여 말한 것으로도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학원 차량에 50분 방치된 아이…고열에 말더듬 증상
원장 A씨는 지난달 17일 오후 1시쯤, 학원 앞에 차량을 세워 아이들을 내리게 한 뒤,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미처 내리지 못한 아이가 차 안에서 다급히 창문을 두드렸지만, 지인과 이야기하느라 A씨는 이를 알지 못했다. 홀로 차 안에 남겨진 아이는 50분이 흐른 뒤에야 행인의 발견 덕분에 가까스로 구출됐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28도였다.
아이 엄마는 SBS 인터뷰에서 “(아이가) 차 안에서 소리를 너무 많이 질러서 목이 잠긴 상태였다”며 “(당시 충격으로) 화장실에서 ‘나는 무섭지 않아’ 혼자 중얼거렸다”고 주장했다. 고열과 말더듬 증상 등을 보인 피해 아동은 현재까지 심리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학차량은 짙은 선팅과 유리창의 광고문구로 내부를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에는 차량 내부가 70도까지도 올라갈 수 있어서, 만약 같은 일이 여름에 벌어졌다면 아이는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A씨는 이 매체에 “확인을 못했던 건 사실”이라며 “저의 안일한 대처가 제일 잘못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 등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2016년 신설된 도로교통법 53조 4항은 ‘어린이통학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어린이통학버스 운행을 마친 후, 어린이나 영유아가 모두 하차하였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A씨에게 큰 처벌이 내려지지 않을 거라고 누리꾼들이 예상하는 이유다.

◆동두천 사건 계기로 ‘슬리핑 차일드 체크’ 본격 논의…곱지 않은 시선?
한편, 지난해 7월 경기도 동두천의 한 어린이집 원아가 대낮 7시간가량 통학차량에 방치됐다가 숨진 사고 이후, 차량 내부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장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일부 어린이집 관계자들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안전의식 강화가 아니라 장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태도를 지적한 거다. 20여년 경력 서울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세계일보(2018년 7월31일자 참조)와의 통화에서 “책임감이 있었다면 아이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고 어린이집 관계자들을 비난했다.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한 기사는 자기 돈으로 장비를 왜 달아야 하느냐고 불만을 내뱉기도 했다.
한국학원총연합회와 태권도경영자연합회는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원·태권도장 통학차량 슬리핑 차일드 체크 설치비용 지원을 촉구했다. 정부·국회의 시스템 도입 의무화에 이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 통학차량 약 4만4000대에 설치비용을 지원했지만, 학원과 태권도장만 대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에만 장치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학원·태권도장은 배제했다”며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의 안전을 확보하려 만든 법 취지에 역행하고 형평성을 위배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운수업체 계약으로 운영되는 통학차량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면서, 서로 다른 영역처럼 구분하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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