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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 경호 '네팔 구르카'족, 세계 3대용병으로 명성 자자· 나머지 2개는…

입력 : 2018-06-07 14:36:17 수정 : 2018-06-07 14: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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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용병부대 중 하나인 네팔 구르카족 병사들이 전통 단검인 쿠크리와 손바닥만한 방패를 들고 집단 무예를 선 보이고 있다. 영국군 용병의 주축인 이들은 싱가포르 경찰 인력의 15%가량을 구성하고 있으며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경호 최선봉에 선다.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 경호에 '세계 3대 용병'부대 중 하나라는 네팔 구르카족 전사들이 투입된다.

이에 따라 세계 3대 용병부대에 대해 관심이 뜨겁다.

세계 3대 용병이라면 구르카족, 바티칸 교황청을 수비하는 스위스 용병, 프랑스 외인부대를 말한다.

이들 용병들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다한다는 점이다. 이 길이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금의 명성을 만들었고 또 유지하고 있다.

▲ 구르카족, 단검 하나로 일본군 24명 저 세상으로 보낸 신화의 주인공 

구르카족은 네팔에 살고 있는 몽골의 후예들이다. 해발 300m가 넘은 고산지대를 작은 언덕 넘나들 듯 뛰어다닌 까닭에 체력과 폐활량이 일반일들보다 월등하다.

또 한사람이 일을 잘 못하면 전체 부족 생계가 끊어지고 죽는다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기에 일에 대한 집중도와 충성도는 대단하다.

이들이 이름은 1816년 벌어진 영국과 네팔 전쟁에서 처음 등장했다. 현대식 화력으로 무장한 영국이 이겼지만 '쿠크리'라는 단검 하나만으로 당대 최강의 영국군을 혼쭐낸 까닭에 영국은 이들의 실력과 용기를 인정, 용병으로 계약하고 그에 걸맞는 좋은 대접을 해 오고 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구르카족과 용병 계약을 맺었으며 인도가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현재 구르카족은 싱가포르 경찰에 1800여명 등 3500여 명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 브루타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영국군 소속이다.

2차대전 당시 구르카 전사 1명이 '쿠크리'만을 들고 일본군 참호로 뛰어들어 24명을 전멸시킨 적도 일화가 있다.

휘어진 단검 쿠르리를 손에 들고 있는 구르카족 용병. 2차대전 당시 쿠르리 한자루를 든 채 일본군 참호에 뛰어들어 24명을 도륙한 전설이 있다.

영국군에 들어가는 구르카족 용병은 1년에 200여명 정도로 제일 낮은 계급 연봉은 2600만원 가량이다. 착실히 근무해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어 경쟁률이 100대1에 가깝다.

입대시험은 25㎏의 돌을 채운 도코(전통 바구니)를 머리에 매달고 가파른 산길 6㎞를 30분대에 주파해야 하는 등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찰의 경우 영국군 선발에서 떨어진 차순위자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300명 가량을 채용한다. 싱가포르 경찰 병력의 15% 가량인 1800여 명이 구르카족이다.

▲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에게 기회가 없다"며 끝까지 교황을 지킨 바티칸 스위스 용병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국왕)가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 연합군을 연파하며 로마 교황청(바티칸)까지 들어 왔다.

당시 모든 군대는 카를 5세에 항복했지만 스위스 용병들로 구성된 바티칸 수비대는 결사항전, 교황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그 과정서 스위스 용병 187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했다. 이들의 헌신에 감격한 교황은 이후 바티칸 수비만은 스위스 용병에게 맡기는 전통이 생겼다.  


스위스 용병들은 18세기 후반 프랑스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시민 혁명군에 포위 되었을 때 궁전을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700명이 전멸당하기도 했다.

그땐 시민 혁명군은 "아까운 목숨을 잃지 말고 물러나라"며 퇴로를 열어 줬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계약기간이 몇 달 남았다"며 거절, 자신들의 일을 수행했다.

전사한 스위스 용병 중 한명의 품에선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라는 편지가 나와 보는 이들을 감격시켰다.

스위스는 산악지대로 늘 자원이 부족하고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가족을 위해 타국으로 나가 용병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한번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 일자리가 끊어지기에 죽음으로 신용을 지켰다.

그 결과 스위스하면 신용의 나라라는 평가가 따랐고 해외 자본은 가장 안전한 보관처로 스위스 은행을 택했다.

오늘날 스위스의 풍요는 죽음을 불사한 용병들의 피로 만들어진 셈이다. 

▲ 프랑스 외인부대, 5년 복무 뒤 프랑스 국적획득을 위해 물불 안가려 

외인부대, 즉 용병의 상징 중 하나가 프랑스 외인부대(레종 에트랑제)다

현재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세계 138개국 출신 8500여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해외에 파병돼 각종 전투에 투입되고 있다. 


외인부대는 만 17∼40세의 남자를 대상으로 신체검사 등 일련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국적, 과거(강력범죄 경력자는 제외), 인종, 언어능력을 묻지 않고 뽑는다.

혹독한 선발 및 4개월여의 훈련과정 동안 지원자 중 90%가 탈락, 10%미만만 외인부대에 들어간다.

이들이 결사적으로 외인부대에 들어가려하는 것은 5년 의무 복무기간을 무사히 채울 경우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다는 프랑스 국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 프랑스내 각종 공공요금의 70%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프랑스 외인부대 역사는 1831년 당시 국왕 필립6세가 알제리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5개대대 규모의 용병들을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장교는 전원 프랑스 국적자가 맡는다.

IMF시절 한국인들 사이에 프랑스 외인부대 붐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지원한 바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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