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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삶에 녹아든 색깔… 그 시대가 보인다

입력 : 2016-12-22 21:01:00 수정 : 2016-12-22 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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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2월까지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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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때로 색으로 규정된다. 260년 백제가 관복 색깔로 등급을 구분하는 공복제도를 시행한 것은 고대국가의 체제 정비 과정을 보여준다. 10세기 후반 등장한 청자는 비색을 창출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명품이 되어 고려 문화의 절정을 증언한다. 14세기 조선자기의 주류가 된 백자는 소박과 절제의 가치를 크게 여겼던 조선문화의 상징이다. 1897년 고종은 황제가 되어 황색을 사용해 자존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한 한국은 빨간색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다.

시대마다 숭상하는 색이 달랐고, 그 색은 삶에 녹아들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내년 2월 26일까지 여는 특별전은 이런 사실을 포착한다. 순우리말과 한자를 조합해 만든 전시회의 제목이 재밌다.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이다.

◆‘빨갱이’에서 ‘붉은 악마’로…시대를 표현한 색

“일본 남자들의 탁한 회색 옷들 사이로 한국 촌로들의 눈부신 흰옷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이 흰옷은 먼지나 오물이 묻어도 햇빛처럼 밝아서 어디서나 특이한 친근함을 자아낸다.”

독일인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가 쓴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방인의 눈에도 한국인을 대표하는 색깔은 흰색이었다. 흰색 두루마기와 저고리를 즐겨 입었고, 선비들은 백자와 백자 문방구 등을 가까이 두어 담백한 생활을 지향했다. 일제는 한반도 지배를 위해 ‘백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깨뜨릴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색복’(色服)을 들이밀었다. 조선총독부는 흰옷이 비경제적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며 “백의는 금물(禁物)”이라고 규정했다. 색의 강요는 통제, 억압의 수단이었다. 

빨강은 시대에 따라 극적인 의미 변화를 보인 색깔이다. 흥선대원군 초상화는 빨간색으로 권위, 위엄을 드러낸 전통시대의 인식을 보여준다. 만화 ‘똘이장군’ 포스터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붉은악마 응원 도구에서는 결속의 매개체가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빨간색은 시대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전통사회에서 빨강은 벽사(나쁜 기운을 물리침)나 권위의 상징이었다. ‘적초의’를 차려입은 ‘흥선대원군 초상’(보물 1499호)은 빨간색에 깃든 격식, 위엄을 잘 보여준다. 빨간색에 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건 한국사회가 극단적인 이념대결을 시작하면서였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깔로 아직도 ‘빨갱이’는 한국사회에서 척결 혹은 배제의 대상으로 간주되곤 한다. 2002년은 빨간색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 해였다. 월드컵 한국대표팀은 “붉은 악마’로 불렸고, 빨간색 응원도구는 결속의 상징이 되었다. 2012년 보수를 자처하는 새누리당이 당색깔을 빨강으로 채택한 건 어떤 의미에서 일대 사건이었다. 


◆피해갈 수 없는 전통문화, 오방색

오방색은 최근 능욕을 당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부터다. 전시회 마지막 장 ‘다색’에서 다룬 오방색이 괜한 오해를 살까봐 박물관 관계자들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박물관 황경선 학예연구사는 “전통문화 속 색을 이야기하면서 오방색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오방색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다섯 가지 방위에 색을 연결시켜 상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쪽은 파랑, 서쪽은 하양, 남쪽은 빨강, 북쪽은 검정, 가운데는 노랑이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연상하면 된다. 오방색을 상스럽게 여긴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게 ‘일월오봉도’다. 전통시대에 왕의 상징물이 되어 최고의 권위, 위엄을 표현했던 이 그림에 다섯 가지 색깔을 사용했다. 순조가 효명세자를 책봉하면서 내린 교명(敎命)은 다섯 가지 색깔의 비단을 연결해 왕실의 격식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오방색과 상생하고, 상극하는 각 5가지 색을 따로 정해 15가지 색으로 다양한 색채 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색동옷이나 다양한 색깔의 편지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전통시대 색깔의 다채로운 활용은 현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해조 작가의 ‘오색광율’(2015년작)은 삼베를 겹쳐 만든 형태에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 색깔을 칠해 강렬한 한국적 색감을 표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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