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리 크뢰이어’는 예술가의 아내였던 19세기 여자의 일생을 그린다. 불행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닮았다.
잘못한 것이 없지만 점점 비참한 삶으로 내몰리는 여인에게 사랑은 에덴 동산의 사과와 같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그녀 자신도, 관객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삶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고통도 견디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생각이 먹먹하게 떠오른다.
영화 ‘정복자 펠레’(1987), ‘최선의 의도’(1992)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빌 어거스트 감독은 ‘빛의 화가’로 불린 P S 크뢰이어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에 주목했다. 아내를 모델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던 P S 크뢰이어는 고흐처럼 창작에 대한 고통으로 미쳐갔다. 정신병에 걸린 덴마크의 국보급 화가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는 세간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 ‘마리 크뢰이어’는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은 타락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어린 딸을 지켜야 했지만 또 다른 미래를 포기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젊고 예뻤다. “아빠가 또 이상해지면 어떡해.” 울먹였던 딸을 두고 마리는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떠난다.
영화는 해피 엔딩도, 슬픈 이야기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기쁨의 꽃망울을 맛보지만 정신병 같은 복병이 언제든 그 행복을 깨트리게 마련이다. 크뢰이어 부부는 행복했던 시절 ‘경이로운 세계’를 추구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물리적으로는 남편의 손에서 그림이 탄생했지만 아내의 헌신과 미모로 ‘빛의 화가’는 빛을 담을 수 있었다. 영화는 19세기 사회적 편견 속에 약자로 살았던 한 여성의 극적인 삶을 통해 고약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숭고함을 이야기한다.
마리 크뢰이어는 위대한 예술가의 여인으로 살았던 카미유 클로델(로댕), 클라라(로베르트 슈만),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오노 요코 (존 레넌)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예술적 욕구는 강했지만 재능은 부족했던 여인이었기에 다른 여자들보다 쉽게 잊혀졌다.
빌 어거스트 감독은 “19세기 덴마크 화가들에 대해 공부하다가 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마리 크뢰이어의 삶에 흥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 유럽 상류 사회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영화 ‘멜랑콜리아’의 미술팀과 함께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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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화가 P S 크뢰이어와 그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마리 크뢰이어’. |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P S 크뢰이어를 선택했고 또 다른 예술가를 사랑한 것, 딸을 두고 떠난 행동이 모여 비극의 크기가 결정됐음을 알 수 있다. 덜 고통스러운 선택이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후회하고 나서 깨닫게 마련이다. 비극 역시 시행착오를 위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눈빛은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단단해진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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