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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술과 건강 이야기'] 술과 '무데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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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1-01 10:17:28 수정 : 2010-11-01 1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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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마시면 욕·폭력 일삼는 사람
알코올이 두려움 조절하는 장치인 편도체·전두엽 마비시키기 때문
스트레스·불만많은 사람 확률 높아… 과음 삼가고 억압적인 성격 고쳐야
“우리 애는 원래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에요!” 사내의 늙은 어머니는 진료실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을 꺼냈다. 평소 과묵하고 소심하던 사내가 술만 마시면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일삼는다며 병원을 찾았다. 무엇이 법 없이도 살아갈 그 사내를 무데뽀로 만들었을까?

무데뽀는 두려움이 마비된 행태이다. 헌데 두려움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다. 해서 무데뽀로 잠시 잠깐 똥폼을 낼 수는 있어도 결국은 파국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우리 뇌에서 두려움을 조절하는 장치는 편도체와 전두엽에 있다. 대뇌 깊숙한 곳에 아몬드 모양으로 박혀있는 편도체는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두려움 조절장치이다. 편도체가 “위험해!” 라고 외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눈동자가 커진다. 싸우거나 도망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편도체가 일차로 반응한 다음 이마 안쪽에 있는 전두엽이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파악해 “정말 위험해, 조심해!”라거나 “별거 아니야, 안심해!”라고 최종 결론을 내려준다. 이런 편도체와 전두엽은 성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폭군처럼 가혹한 편도체와 전두엽은 두려움을 부풀려서 억압적인 사람을 만든다. 반대로 머저리처럼 흐리멍덩한 편도체와 전두엽은 두려움을 적절히 형성하지 못해서 무데뽀를 만든다. 그렇다. 술을 마시면 무데뽀가 되는 이유도 바로 술이 편도체와 전두엽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88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연말 개봉된 ‘칠수와 만수’는 술과 두려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미친 X, 지랄하고 있네!”

소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시위 뉴스를 보던 만수(안성기)의 입에서 욕설이 새나왔다. 평소에 만수는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만수는 밧줄 하나에 목숨을 내걸고 간판을 그리는 도장공이었다. 과거에 돈을 벌려고 해외취업을 신청했지만 반공법으로 장기복역 중인 아버지 탓에 여권을 받지 못했다. 이도저도 해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지만 만수는 그저 말문을 닫고 모든 것을 참으며 살았다.

◇이준석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카프병원장
“내가 누군지 알아? 박만수다! 이놈들아!”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만수는 정치 뉴스가 나오자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텔레비전을 다시 켜라는 다른 손님들에게 만수는 이렇게 소리치며 다짜고짜 싸움판을 벌였다.

술은 먼저 전두엽을 마비시킨다. 전두엽은 행동을 절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술을 마시면 전두엽의 통제가 약해지면서 평소와 달리 격의 없이 행동하게 된다. 술을 더 많이 마시면 편도체가 마비된다. 이제 두려움이 사라진다. 이쯤 되면 소위 무데뽀가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 마비된 무데뽀는 용기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이성으로 극복하는 것이니 말이다.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고 불만을 억압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술에 취했을 때 무데뽀가 될 가능성이 특히 높다. 그러므로 술에 취해 무데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지나치게 억압적인 성격은 바꿀 필요가 있다. 과음을 삼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포경선을 타고 다니며 남태평양 군도에서 식인종과 함께 지냈던 경험을 가진 19세기 미국작가 허먼 멜빌은 그의 대표작 ‘모비 딕’에서 이렇게 말했다. “술 취한 기독교인 보다는 취하지 않은 식인종과 자는 게 낫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카프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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