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청장 홍창원(55·사진)씨는 요즘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남도가 부여군 규암면 일대에 옛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조성 중인 백제역사재현단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숭례문 복구작업 관련 장인들 회의가 있을 때 참석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 몸은 현장에 있지만 머릿속은 늘 숭례문에 그려 넣을 단청으로 복잡하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그를 지난달 27일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만났다. 짙은 눈썹 아래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이 인상적이다. 기자의 물음에 답할 때 빼고는 늘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모습에서 수십 년간 단청장으로서 외길을 살아왔을 그의 고집스러움이 묻어났다.
10일부터 숭례문 복구가 시작되면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부재 해체작업을 시작으로 성벽복원, 목공작업, 기와 올리기, 미장작업 등의 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가 맡은 단청작업은 복구공사 말기인 2012년 중순이나 돼야 가능하다. 그런데도 화재 2주년을 계기로 복구작업이 시작되자 그는 긴장감마저 생긴다.
“국보 1호 복구작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데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숭례문 단청을 멋지게 입혀 한국 단청의 미를 제대로 알리고 싶은 조급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그동안 그가 단청 작업을 한 주요 궁과 사찰의 전통적인 단청기법을 다시 챙겨보고 각종 문헌들을 뒤지며 숭례문 단청작업 때 제대로 ‘한국의 색’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색으로 누구나 말로는 단청을 많이 얘기하지만 실제 제대로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단청은 청·적· 황· 백· 흑 5색을 기본으로, 궁이나 절의 벽· 대문·천장· 기둥에 여러 무늬와 그림을 그려서 색칠하는 것이다. 흔히 절에서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 사용하는 색이나 그림으로 알고 있지만 단청은 단군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해왔다. 삼국시대 벽화와 장식품에도 단청의 색과 문양들이 쓰여졌다.
“단청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음양오행설입니다. 단청에 사용된 반복된 문양은 화재와 잡귀를 막아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단층은 또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목재의 수명을 연장해주는데, 비바람에 의한 풍화나 뒤틀림을 방지하고 썩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15살 때 불심이 남달랐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당시 봉원사에서 작업을 주로 했던 단청장 만봉스님(2006년 입적) 문하생으로 단청에 입문했다. 단청공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코흘리개 시절부터 절에 다니며 자주 봐 친숙했던 덕택에 단청을 배우는 일이 그에게는 지루하거나 힘들기는커녕 즐겁기만 했다. 좋아하니까 진도도 빨라 그의 스승을 흐뭇하게 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는 ‘단청 영재’였던 셈이다.
단청에 제대로 감을 잡기 시작한 그는 20살을 넘기자 만봉스님을 보좌하며 서울 보문사 일주문 단청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일했다. 1981년에는 만봉스님의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된 데 이어 86년에는 이수자로 선정됐다. 이때부터 그는 창경궁 문정전(1986년), 경복궁 경회루· 강녕전·사정전·교태전(1994년∼1995년), 덕수궁 중화전(2001년), 경복궁 근정전(2003년) 등 국내 주요 궁궐과 사찰의 단청을 도맡아 이름을 얻기 시작했으며 결국 2009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그에 따르면 숭례문은 조선 태조 때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6차례가량 단청작업이 있었다. 조선 전·후기 한차례씩 1954년, 1963년, 1973년, 1983년 등 6차례로 추정되는데, 매 단청작업 때마다 시대별 특징을 반영하듯 문양이나 색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숭례문 단청 작업 때는 시기별 단청을 잘 파악해 가장 적합한 단청을 입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숭례문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만큼 매연과 소음에도 단청이 아름다움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1990년부터 경기도 광주 퇴촌에 ‘한국 단청연구소’를 운영중인 그는 숭례문 복구작업이 끝나면 전통 단청 보전과 후학양성에 매진할 계획이다. “40년간 단청 일을 하면서 우리의 단청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다양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러나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어 안타깝습니다. 단청 장인으로 삶을 사는 만큼 옛 단청을 제대로 복원 보전하고 후학들에게 교육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제가 복원을 소홀히 하면 다음 세대에게 보여 줄 우리의 단청문화는 없어지겠지요,”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도 부여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의 단청들을 살펴보며 또다시 ‘공부’중이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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