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주국제영화제 일본어 통역을 맡고 있는 배경복씨는 “통역이나 영화 제작 모두 사람이 중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
사실 통역하는 이들에게 국제영화제라는 ‘일감’은 그리 매력적인 편이 못된다. 보수는 턱없이 낮고 품은 갑절이 들기 때문이다. 상영작을 미리 살펴서 줄거리나 출연 배우, 한국 제목 등을 알아둬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통역을 맡은 감독, 배우의 필모그래피와 작품세계, 성향까지 꿰뚫고 있어야 그들 발언의 의미와 맥락, 뉘앙스를 비교적 정확하게 전할 수 있다. 배씨는 “잘하면 ‘본전치기’고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게 영화제 통역자의 운명”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럼에도 영화제가 다가오면 배씨는 일부러 국제비즈니스회의 통역이나 일본어능력시험(JPT) 수험서 집필과 같은 일감을 거의 맡지 않는다. 평소 존경하는 감독과 좋아하는 배우의 생생한 목소리와 생각을 맨 처음 듣고 전하는 뜻 깊은 기회이자 그동안 쉼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휴가 같은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전주영화제는 그 어느 영화제보다 기대와 설렘이 컸다. 1년 전 처음 접한 전주영화제만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매력을 가와세 감독에게 전하고 이를 그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가와세 감독이 지난 1월 ‘삼인삼색’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이고, 사람의 기본은 자기 자신에서 출발한다. 나를 알지 못하면 사람도 알 수 없다.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고 말한 것을 통역하면서 제가 평소 머리를 싸맸던 숙제 하나가 단박에 풀린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제는 그에게 일터, 쉼터인 동시에 또다른 ‘도전’을 위한 배움터이기도 하다. 배씨는 독립영화 2편을 준비 중인 예비 제작자이기도 하다. 영화제 통역을 많이 맡다보니 감독과 배우를 촬영 현장에서 만나고 싶어졌고, 스태프 100여명의 힘과 땀이 집약된 영화의 제작과정을 경험하고 나니 그 역시 이러한 기쁨과 감동의 한가운데 서고 싶어졌다. 배씨는 “가와세 감독이 영화에 대한 내 사명감, 의무감을 일깨워준 셈”이라고 말했다. 두 편 중 한일 양국의 미묘한 가치관 차이를 말하는 한 편은 연말까진 제작 완료할 계획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외국 감독, 배우의 귀나 입 역할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 통역했던 나카무라 도루(‘입맞춤’)로부터 “(함께 맛본) 홍어 맛이 아직도 그립다”란 메일을 받기라도 한 날이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영화제에서 배우보다 뒷전일 수밖에 없는 외국 감독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휑하다. “통역이나 영화나 둘다 실력보다는 사람 간 신뢰가 더 우선한다는 것 아닐까요?” 통역과 영화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배씨의 명쾌한 답변이다.
전주=송민섭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