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렌즈 가득 ‘청색’을 담다
사진작가 신특수(50)씨는 남극의 진정한 색깔은 청색으로 드러난다고 단언했다. 높이 40∼50m에 이르는 거대한 빙벽 앞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그의 손놀림은 여느 사람의 시선보다도 빠르다.
“모든 색깔의 섀도(그림자)는 검은색이지만 흰색 섀도는 청색이지. 청색은 찬 느낌, 즉 남극적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라고 봐.”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임에도 그는 “사진은 기다림”이라는 철칙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남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남극의 석양을 사진에 담아 내기 위해 영하의 날씨 속에 해가 지는 밤 11시까지 3∼4시간을 족히 기다린다. 얼큰히 취기가 오른 가운데서도 남극 밤하늘의 옥빛을 놓치지 않는다.
◇(왼쪽부터)사진작가 신특수씨, 동화작가 한정기씨, 화가 강소영씨 |
2002년에도 킹조지 섬 일대에서 작업을 한 바 있는 신씨는 “세종기지 주변은 남극에서 바늘구멍만한 곳에 불과하다”며 “남극대륙에 가야 진정한 남극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이후 언젠가는 남극대륙으로 들어가 ‘제대로’ 남극을 담아 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빛을 찾아낼 수 있을지 나도 기대돼.”
누구도 보지 못했던 남극의 진정한 모습을 찍기 위해 신씨의 고민은 담배 한 개비와 어우러져 남극의 밤과 함께 점차 깊어간다.
#2 남극에서 ‘시간’을 읽다
“남극의 만년빙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까. 그리고 이곳 남극까지 헤엄쳐 와 삶을 다한 고래, 그 고래의 뼈에 이끼가 끼기까지 또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요.”
한정기(46·여)씨는 동화작가다. 그는 이곳 남극에서 새로운 테마를 얻었다고 했다. ‘시간’이었다. 남극은 여름이 되면 20시간 가까이 밖이 훤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긴 밤이 이어진다. 이 역시도 한씨의 가슴에는 시간의 의미로 자리했다. 펭귄들도 마찬가지다.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는 매년 여름 두 종류의 펭귄들이 찾아와 번식한다. 각각의 펭귄은 비록 유한한 삶을 살지만, 펭귄이라는 종 자체가 이곳을 찾는 광경은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고 한씨는 말한다.
“당신과 내가 마주 앉은 이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그렇지만, 자연과 내가, 자연과 인간이 마주하는 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죠. 남극은 그 시간을 얘기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 자연의 ‘소리’ 스케치하다
화가 강소영(36·여)씨는 소리에 ‘필(feel)이 꽂힌’ 모양이었다. 그는 남극에서의 다양한 체험 속에서 각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주목했다고 했다.
“남극제비갈매기의 울음소리와 남극 바다의 파도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전해주는 소리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고자 합니다.”
화가의 눈에는 블리자드가 그친 뒤 눈 속에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돌이 마치 웅크리고 있는 아이로 보인다. 또 화가는 유빙의 갖가지 형상에 벌집이나 거북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스케치해 담는다. 강씨는 “남극은 인간의 세상과 닿지 않고 자연과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며 “그림이 될지, 설치미술이 될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이 될지 모르지만 이번 남극에서의 ‘산책’을 통해 얻은 느낌들을 충분히 담아갈 생각”이라고 말을 맺었다.
남극 킹조지 섬=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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