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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빙의 그림자, 시리도록 푸르렀다

관련이슈 남극, 동면에서 깨어나다

입력 : 2008-05-11 20:24:07 수정 : 2008-05-11 20: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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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동면에서 깨어나다 남극이 분주하다. 남극의 주인 펭귄은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고, 여름 철새들도 저마다 둥지를 틀었다. 미지의 대륙에서 점차 보폭을 넓혀 나가는 인간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긴 매한가지다. 세종기지에는 보급품과 과학자들을 태운 하계연구선이 곧 입항할 예정이다. 20개국 47곳의 남극기지들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국제극지의해(IPY·2007∼08년)를 앞두고 전열 재정비에 돌입했다. 세계일보는 이달 5일부터 작가, 사진가, 화가 등으로 구성된 ‘2006 남극연구체험단’과 동행해 남극 현지의 모습과 체험단의 활동 상황 등을 4회에 걸쳐 생생히 전달한다.

지난 15일 한 달여 만에 남극 킹조지에 블리자드(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찾아왔다. 초속 20m에 이르는 바람에 날려온 남극의 눈은 사람이 힘겹게 지나간 발자국을 순식간에 메워버린다. 아무리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다지만 남극다운 모습은 여전했다. 혹한의 대륙이자 미지의 세계인 남극이 펜과 붓, 그리고 사진기를 통해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할까. ‘2006 남극체험단’ 일원으로 세종기지를 찾은 예술인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그리고 저마다의 의미를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빛이 역력했다.



#1 렌즈 가득 ‘청색’을 담다

사진작가 신특수(50)씨는 남극의 진정한 색깔은 청색으로 드러난다고 단언했다. 높이 40∼50m에 이르는 거대한 빙벽 앞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그의 손놀림은 여느 사람의 시선보다도 빠르다.

“모든 색깔의 섀도(그림자)는 검은색이지만 흰색 섀도는 청색이지. 청색은 찬 느낌, 즉 남극적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라고 봐.”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임에도 그는 “사진은 기다림”이라는 철칙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남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남극의 석양을 사진에 담아 내기 위해 영하의 날씨 속에 해가 지는 밤 11시까지 3∼4시간을 족히 기다린다. 얼큰히 취기가 오른 가운데서도 남극 밤하늘의 옥빛을 놓치지 않는다.







◇(왼쪽부터)사진작가 신특수씨, 동화작가 한정기씨, 화가 강소영씨




2002년에도 킹조지 섬 일대에서 작업을 한 바 있는 신씨는 “세종기지 주변은 남극에서 바늘구멍만한 곳에 불과하다”며 “남극대륙에 가야 진정한 남극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이후 언젠가는 남극대륙으로 들어가 ‘제대로’ 남극을 담아 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빛을 찾아낼 수 있을지 나도 기대돼.”

누구도 보지 못했던 남극의 진정한 모습을 찍기 위해 신씨의 고민은 담배 한 개비와 어우러져 남극의 밤과 함께 점차 깊어간다.

#2 남극에서 ‘시간’을 읽다

“남극의 만년빙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까. 그리고 이곳 남극까지 헤엄쳐 와 삶을 다한 고래, 그 고래의 뼈에 이끼가 끼기까지 또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요.”

한정기(46·여)씨는 동화작가다. 그는 이곳 남극에서 새로운 테마를 얻었다고 했다. ‘시간’이었다. 남극은 여름이 되면 20시간 가까이 밖이 훤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긴 밤이 이어진다. 이 역시도 한씨의 가슴에는 시간의 의미로 자리했다. 펭귄들도 마찬가지다.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는 매년 여름 두 종류의 펭귄들이 찾아와 번식한다. 각각의 펭귄은 비록 유한한 삶을 살지만, 펭귄이라는 종 자체가 이곳을 찾는 광경은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고 한씨는 말한다.

“당신과 내가 마주 앉은 이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그렇지만, 자연과 내가, 자연과 인간이 마주하는 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죠. 남극은 그 시간을 얘기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 자연의 ‘소리’ 스케치하다

화가 강소영(36·여)씨는 소리에 ‘필(feel)이 꽂힌’ 모양이었다. 그는 남극에서의 다양한 체험 속에서 각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주목했다고 했다.

“남극제비갈매기의 울음소리와 남극 바다의 파도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전해주는 소리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고자 합니다.”

화가의 눈에는 블리자드가 그친 뒤 눈 속에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돌이 마치 웅크리고 있는 아이로 보인다. 또 화가는 유빙의 갖가지 형상에 벌집이나 거북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스케치해 담는다. 강씨는 “남극은 인간의 세상과 닿지 않고 자연과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며 “그림이 될지, 설치미술이 될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이 될지 모르지만 이번 남극에서의 ‘산책’을 통해 얻은 느낌들을 충분히 담아갈 생각”이라고 말을 맺었다.

남극 킹조지 섬=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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