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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7> 육아육묘, 털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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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1 19:00:00 수정 : 2016-05-22 21: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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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얘를 할퀴면 어쩌냐.”(시어머니)

“털이 얘한테 안 좋은데. 고양이 좀 치워라.”(친정 아빠)

우리집 고양이들은 2년 전 나의 임신과 함께 양가 어른들의 눈엣가시가 됐다. 나는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버텼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면 어떡하지….’

아이가 태어난 지 15개월. 다행히 시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내게도 가끔씩 덤비는 사고뭉치 첫째 고양이는 아이가 다가가면 줄행랑을 친다. 어른들에게 수시로 발톱을 세우는 녀석이 아이한테 잡혔을 때는 “에에에” 새소리를 내며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릴 뿐이다. 친정 엄마는 “고양이가 어린 생명을 알아보는 것 같다”며 기특해했다.

생후 100일부터 아기와 고양이들은 경계 없이 생활하게 됐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첫째 고양이가 다가와 살며시 바라본다. “왜우냐옹”
문제는 털이었다. 우리집에는 하얀색이나 노란색 털이 가을 낙엽처럼 모든 곳에 떨어져있다. 다행히 아이에게 털 알러지는 없지만 아기 입술에 털이 끼어 나풀거릴 때면 나는 쏙 뽑아내며 외친다. “아아아, 또 털….”

생후 100일까지 아이와 고양이는 격리된 채 지냈다. 안방은 고양이들의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매일 나와 붙어서 잠들던 녀석들이었는데 첫째 고양이가 거실로 쫓겨나면서 울분을 토했다. 밤마다 1∼2시간씩 방문을 긁으며 “우오오오오”(이 녀석은 화가 나면 늑대 소리를 낸다) 울부짖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굳게 마음을 먹었다.

‘왕중아(첫째 고양이) 털 때문에 아이가 아프면 우리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할지도 몰라. 이게 너와 내가 공존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고양이는 내 마음을 몰랐다. 매일 밤 녀석은 방문에 매달려 울었다.

안방 출입을 허락하자 첫째 고양이가 침대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아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긴(아이가 자는 곳) 내 자리였는데!”
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린 시절, 포메라이안 강아지와 가족처럼 지냈다. 무려 7년이었다. 그런데 가게에 딸린 작은 마당에 뛰놀던 녀석은 우리 가족의 아파트 입주로 터전이 바뀌면서 적응하지 못했다. 집안 곳곳에 오줌을 쌌다. 배변 훈련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개훈련 학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부모님은 강아지를 좁은 베란다에서 키우다가 불쌍하다며 고향 친척 집에 보냈다. 명랑했던 녀석이었는데 상처를 받았는지 식음을 전폐해버렸다. 다시 데려와 지인 가게에 강아지 집을 마련해주었는데 결국 유기견이 됐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길에서 춥고 배고픈 생활을 했을 걸 생각하면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집안 대소사에 결정권이 없는 고작 초등학생일 뿐인 내 자신이 한심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성인이 된 뒤 다른 동물을 돌보며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시중에서 사고파는 동물보다는 길 위의 삶을 힘들어하는 동물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전 고양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첫째 고양이의 사연을 보았다.

2014년 1월 우리 왕중이는 추위에 떨며 경기도 부천의 한 가정집 앞에서 3일간 울부짖었다. 그집 아버지는 길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를 불쌍하게 여긴 딸이 아버지 몰래 집안에 들인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고양이가 자꾸 찾아와요. 집에서 생활하고 싶어하는데 아빠가 알면 다시 쫓아내야 해요.”

신랑과 나는 부천으로 달려가 첫째 고양이를 데려왔다. 그때 달리는 차 안에서 드라마 ‘상속자들’의 삽입곡 ‘투영’의 ‘세렌디피티’를 들었는데 경쾌한 베이스음에 내 기분도 둥둥 떠다녔다.

둘째 고양이는 6개월 뒤 동네 주차장에서 만났다. 일명 ‘냥줍’(고양이 줍기, 우연히 만나 데려온다는 의미)이었다. 영역 싸움에서 진 뒤 떠밀려온 고양이였다. 발톱 하나가 빠져 피가 뭉쳐 있었고 뒷다리 털은 무더기로 뽑힌 상태였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성묘의 몸무게가 1.7kg에 불과했다. 신랑과 나는 집으로 데려올지 여부를 놓고 약 3시간을 망설였다. 당시 나는 임신 중이었다.

“딱 두마리까지만이야.” 우리는 어렵게 결정을 내렸고 애교 많고 착한 고양이가 둘째가 됐다.

아기가 태어난 뒤 고양이들을 만났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 집에 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기가 있는 집에 털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혀 걱정할 게 못 된다”고 공언하는 집사들도 있는데, 유아의 호흡기는 어른보다 약하기에 당연히 염려하고 신경써야 한다.

이로 인해 지난해 육아휴직 기간 내가 수행했던 역할 중 하나는 ‘털 치우는 노예’였다. 눈을 뜨자마자 바닥 청소기를 돌린 뒤 다시 침구 청소기로 아기 매트와 소파, 침대 등을 문질러댔다. 몇 시간 지나면 다시 털투성이가 되기에 아기가 집중 생활하는 곳은 수시로 닦았다. 한 여름 털 청소로 땀을 뻘뻘 흘릴 때면 고양이들을 향해 탄식했다. “엄마는 니네들 팔자가 가장 부럽구나.” 녀석들은 밤에 뛰어놀고 한낮이면 쿨쿨 잠에 빠졌다.

아기의 장난감은 이제 고양이들 장난감이기도 하다. 첫째 왕중이(왼쪽)와 둘째 아리.
그런데 아기가 크면서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이 커졌다. 6개월 무렵부터 아이가 동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까꿍”, “부릉부릉” 어른들은 크게 재롱을 부려야 시원하게 웃어주는 아이가 고양이들은 보기만 해도 깔깔깔 웃음보가 터졌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셋이서 술래잡기를 했다. 친정엄마는 아이가 고양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녀석들 밥값을 한다”며 웃었다.

출산 이후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의미와 의문이 가끔씩 고개를 들었다. 2년 전 만났던 정경섭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 대표의 말이 맴돌았다.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로 협동조합 형태의 동물병원을 연 그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수명은 사람보다 짧잖아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보다 생애주기가 짧은 동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삶에 대해 더욱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 우리 고양이들은 10∼15년 후면 별이 될 터이다. 그 때 아이의 나이는 10∼15살. 어린 나이에 경험하는 가족의 죽음은 얼마나 충격적일까. 나조차도 한 동안 눈물을 쏟으며 지낼 텐데…. 그 슬픔, 공허함, 허무함, 그리움은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는 양분이 될 것이다. 나는 고양이들과 생활하면서 이전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동물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육아 전문가들은 모성을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성격 확장’이라 하는데 동물과의 동거도 그렇다.

꼭 아이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보듬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임신과 출산으로 이미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반려동물의 처분을 고민한다면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에잇, 고양이들”이라며 눈을 흘기고 친정 아빠는 “이거이거 털 안 되는데”라며 혼잣말을 하신다. 부모님 불평을 들으며 마음 상하고, 털 치우는 노예 생활이 힘들 때가 있지만 모두 함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좋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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