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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8> 남편은 나의 둘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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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8 14:00:00 수정 : 2016-05-28 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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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휴일이 정말 괴로워.”

아들 둘을 키우는 친구는 휴일이면 한숨을 내쉰다. 평일에 남편은 출근하고 큰 아들은 유치원에 간다. 돌쟁이 작은 아들의 요구 사항만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휴일은 세 남자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날이다.

“큰 아들(5살)은 놀아달라, 둘째 아들(2살)은 안아달라, 셋째 아들(37살, 남편)은 밥 달라…. 내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어.”

밖에서 돈 벌어온다며 큰 기침을 하는 남편은 휴일이면 거실 바닥과 한 몸이 된다. 아이들 챙기며 청소하고 세 끼 식사를 차리는 일 등 집안일은 모두 친구의 몫이다. 내 주변에는 퇴근 후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준다는 남자들은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런 남자와 산다는 여자는 거의 없다.

지난 어린이날, 집에서 아이들과 복작이게 된 한 언니는 단체 채팅방에 한숨을 토해냈다. 휴일이면 남편은 바깥 음식이 질린다며 건강식 밥상을 주문했다. 아이는 초등학생부터 돌쟁이까지 셋이었다. 언니는 “휴일에는 챙겨줘야 하는 애가 넷으로 늘어난다”며 “휴일 너∼∼무 싫어”를 외쳤다.

이런 풍경이 내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요즘 우리집에 애가 둘인 상황을 놓고 갈등 중이다. 마흔 줄에 접어든 남편은 최근 “나도 애다”(밥 차려주고 관심 가져달라는 의미)라고 선언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게 되면서 남편의 각종 요구와 잔소리에 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게 됐다. “당신이 좀 알아서 해.” “난 지금 나랑 애랑 두 사람을 챙기고 있잖아.” 나는 복직 후 수면 시간을 뺀 ‘18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퇴근 후 남편은 아이랑 잠깐 놀아줄 뿐 각종 뒤치다꺼리와 재우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아이가 밤늦게 잠들면 나는 다음 날 회사에서 연신 하품을 해댄다.

남편과 물어뜯던 어느 날, 우연히 본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초감정. 아이 양육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었다. 감정에 대한 감정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이가 떼 쓰고 울 때 양육 스트레스가 큰 엄마는 부정적인 초감정으로 아이를 대한다. ‘얘가 날 왜 이렇게 괴롭히나’, ‘얘는 참 신경질적이구나’라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 아이의 감정을 재단하는 것이다. 아이는 그저 배고프거나 아파서 우는 걸 수 있는데 말이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양육을 하려면 내 감정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말고 아이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한다. 다행히 나는 아이에게는 초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이다. 새벽에 여러 번 깨서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얘가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하나’라며 짜증내지 않고 ‘무서운 꿈을 꿨나’, ‘아직 정말 어리구나’라며 안아준다.

하지만 남편에게만은 이게 안 된다. 철저하게 초감정으로 대했다. ‘이 남자가 날 왜 이렇게 괴롭히나’, ‘내 몸이 두 개인가’ 등 내 기분에 따른 즉흥 감정이 끓어올랐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남편이 외롭구나’, ‘친정 식구들이 자주 찾아오면서 불편했겠구나’라고 이해하는 마음이 앞서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20살 이후 자취 생활을 했던 남편에게 결혼은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삶의 변화였다. 그에게는 엄마처럼 아내가 밥 해주고 챙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사의 공동부담을 주장했고, 출산 이후로는 육아와 일에 시달리며 남편은 뒷전으로 여겼다.

지금도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살림은 여자의 몫이라는 주장에는 즉각적으로 “노(No)”가 터져나온다. 다만 챙겨주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을 비난만 하지 말고 한번쯤 제대로 어루만져줄 걸 하는 아쉬움은 든다. 나는 “다 큰 성인이 왜 그러냐. 나도 당신이 해주는 밥 좀 먹고 싶다”고 외쳤다. “자식보다는 부부 관계에 집중할 것”이라 다짐했었는데 지금 내 삶의 무게는 온통 아이에게 쏠렸다.

남편에 대한 ‘초감정 다스리기’, ‘둘째 아들로 여기며 챙겨주는 일’은 나의 과제가 됐다. 남편들도 부인의 관심과 뒷바라지를 바란다면 애 보랴, 살림하랴, 일하랴 전전긍긍하는 아내의 노고를 덜어줘야 한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클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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