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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9> 한국의 산후조리 문화는 요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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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4 14:00:00 수정 : 2016-06-12 15: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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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축복받은 황금 골반이네요.”

담당 의사의 진단대로 나는 유도분만 4시간 만에 아이를 순풍 낳았다. 곧장 미역국을 들이켜며 “갈증이 가장 힘들었다”며 의기양양했다. 출산이 어마어마한 몸의 변화라는 걸 간과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한 겨울에 간편한 차림으로 신생아실에 가다가 그만 졸도를 했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고통, 숨막힘으로 “진짜 미치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의식이 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곧 의식을 회복했지만 다음 날까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신랑은 “홀아비 되는 줄 알았다”며 쩔쩔 맸다.

인터넷상에서 남녀 대결의 쟁점이 된 ‘산후조리 논쟁’을 접했을 때 조금 의아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산후조리가 뭐가 문제지?’

산후조리와 관련해 ‘여혐’(여성 혐오)을 표출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대략 이랬다. “한국 여자들의 몸조리 문화는 유난하다”, “비싼 산후조리원에서 돈 낭비하려는 허영심과 애 낳았다는 핑계로 관심 받으려는 ‘관종’(관심 종자) 성격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다”, “서양 여자들은 애 낳고 곧장 돌아다닌다”, “서양은 여자 골반이 크고 아기 머리가 작지만 동양은 그 반대라는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산후조리는 불필요하다” 등이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은 비판의 대상과 결론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산후조리 논쟁은 온라인상에서 한국 남녀가 대결하는 쟁점 중 하나가 됐다.

서양 여자들이라고 해서 혼자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는 건 아니다. 서양에서는 남편이 출산한 아내 곁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거든다. 스웨덴에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최대 190만원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성평등보너스제도’가 있고, 노르웨이는 육아휴직의 ‘아버지할당제’를 도입해 남성에게 6주 간의 유급휴가를 준다.

또 독일·스웨덴·네덜란드·영국 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산후관리시스템이 있다. 독일에서 아이를 낳은 소꿉친구는 출산 후 독일 정부에서 파견한 헤바메(Hebamme, 산파)로부터 신생아 돌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의료보험 가입자라면 10번까지 무료로 헤바메의 방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친구는 “나는 모유 수유를 하다가 아이가 잠들면 그대로 뒀는데 헤바메가 아이를 깨워서 더 먹여야 깊은 잠을 잔다고 가르쳐줬다”고 했다. 친구가 헤바메로부터 배운 것들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조리원이나 직접 고용한 산후도우미에게 배운다. ‘엄마가 쉬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내 주변의 초보맘들은 실전 교육을 위해 조리원행을 택한 경우도 많았다. 국내에도 지방자치단체에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저소득층 등 소수에 한정된다.

자연분만은 회음부를, 제왕절개는 아랫배를 찢고 꿰매기 때문에 산모들은 2∼3주간 제대로 거동하지 못한다. 자연분만의 경우 곧장 씩씩하게 걸어다닐 줄 알았는데 생식기를 꿰맨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이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남자들도 포경수술을 하거나 맹장 수술을 한 뒤에는 한동안 거동이 어렵지 않은가.

더욱이 나의 경우 모유 생성 과정에서 호르몬 변화가 생겨 체감 온도도 들쭉날쭉 해졌다. 더워서 헉헉 거리다가 오한에 덜덜 떨었다. 가슴·배 등 몸의 일부가 너덜너덜해졌다는 상실감도 밀려왔다.
한 몸에서 이제 막 두 사람으로 분리된 엄마와 아기가 얼굴을 맞대고 있다.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고통을 겪은 산모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아이와 관련해 대부분 척척 해내는 ‘베테랑 엄마’지만 ‘예비맘’ 때는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등 기초적인 일조차 염려스러웠다. 초보자의 무식이 이제 막 태어난 연약한 생명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다. 그 때 “조리원 들어가면 다 가르쳐준다”는 주변 엄마들의 말에 안심이 됐다.

하지만 산후조리원 시세를 알고는 망설여졌다. 2주에 평균 200∼300만원이었다. 연예인들의 입소로 화제가 된 ‘D산후조리원’(2주에 최대 2000만원) 가격에는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주변 여자들도 조리원 가격이 비싸다는 데는 동감했지만 산후도우미 등 다른 대안도 돈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수유, 목욕 등 아기 돌보기부터 방 청소, 빨래, 요리, 젖병 소독 및 설거지 등 집안일을 불편한 몸으로 혼자 해낼 자신은 없었다.

나는 한국의 조리원 문화는 사회보장제도의 부실과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관계가 변화한 틈을 자본이 파고든 것이라 생각한다. 조리원 가격대가 수백에서 수천만원까지 형성되며 출산의 부담을 높이고 계층 간 위화감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병원비에 조리원 비용까지 더해져 출산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커진 것도 맞다. 그 과정에서 “쓸데 없이 돈 쓴다”, “비싼 데 가려고 한다”며 조리원을 여자들의 허영으로 보는 시각도 등장했다.
서양 여성들은 출산 직후 남편의 도움과 산후관리시스템을 제공하는 국가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모든 회사가 남편의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산후관리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신생아 돌봄 교육과 산모의 휴식을 철저히 가족이나 돈에 의존하는 문화가 발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료 조리원 운영’과 같은 일회성·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후관리시스템은 많은 장점을 지닌다. 국민의 출산 부담을 덜어줄 뿐더러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1∼2시간 가정을 방문하는 도우미 제도는 수많은 여성에게 유연 근무제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찬물에 손 대면 안 된다”, “뜨끈한 곳에서 몸을 지져야 한다”, “많이 움직이면 안 된다” 등 ‘꼼짝마’식 산후관리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냈던 선조들의 방식이라 바뀌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은 “지갑을 더 열라”며 유혹하는 자본과 국가 정책의 부실이지 산후조리 자체가 돼서는 안 된다. 출산의 고통을 겪은 산모에게는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다. 산후조리 논쟁이 남녀 대결이라는 소모적 싸움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바꾸는 비판적 의식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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