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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5> 난 어떤 엄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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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7 13:12:21 수정 : 2016-05-20 1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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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없는 부모 아이는 상처받는다
여자는 자식을 낳으면 친정 엄마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고 한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핏덩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고된 과정을 겪으며 키워준 은혜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과 함께 찾아오는 다른 마음도 있다.

‘엄마, 아빠는 나한테 왜 이렇게 해주지 않았을까?’라는 원망이다. 사회 분위기상 이런 마음은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부모를 나쁘게 말하는 배은망덕한 자식이나 은혜를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까 두렵고, 사랑 받았던 때가 떠오르며 자책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에게 상처받은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도 완전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또 생전 처음 부모가 된 미숙한 어른이기에 자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가졌던 불만은 나의 반항적 기질 때문만이 아니라 부모의 미숙한 양육 탓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시험에서 나는 전 과목 빵점을 맞았다. 오지선다형 문제에서 번호로 된 답을 쓰라고 주어진 작은 괄호에 내가 생각한 정답을 한글로 구구절절이 적었던 것이다. 그날 엄청 혼나면서 “넌 바보냐?”는 비난을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술 시간에는 달랐다. 내가 그린 첫 그림, 선생님이 손에 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칭찬했던 무궁화 그림은 기억 속에서 아직도 빛이 난다. 나는 초등 시절 내내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그림 그려서 뭐하게?”라며 이모가 딸들에게 가르친다는 이유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에 끌려다녔다. 친구들이 3년이면 끝내는 바이엘과 체르니100번, 체르니30번에 이르는 과정을 배우는데 6년이나 소모했다. 같은 학원 애들이 으레 한번씩 참가했던 어린이 피아노 대회에 단 한번도 참가하지 못했다. 학원에서는 졸거나 장난 친다고 야단맞고 엄마한테는 왜 이렇게 진도가 느리냐며 혼이 났다.

엄마는 소풍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주고, 한 겨울에 딸의 내복을 이부자리 아래에 놓았다가 다음 날 아침 따뜻하게 입혀주는 다정한 부모였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는 둔감했다. 딸이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는 엄마가 바라는 걸 베풀고 싶어했다. 미술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건 나였지만 수많은 시간 진로 문제로 엄마와 다퉜다.

육아일기의 문패를 ‘엄마도 처음이야’로 정한 건 나 스스로 처음이라는 걸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는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미숙한 존재지만 나 역시도 아이를 처음 양육하는 미숙한 부모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며 어른의 입장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사촌언니는 첫째 아들이 유치원에 다닌다. 같은 반에는 언니 아들이 꼬집고 때린다며 자주 대성통곡하는 여자애가 있다. 언니가 살펴보면 아들 몸에도 꼬집힌 상처가 가득한데 아이는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 오해를 산다. 유치원 선생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여자애가 먼저 때린다고 하는데도 해당 아이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ㅇㅇ가 날 때린다”며 험담하고 다닌다.

언니는 이 일로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해당 아이의 엄마와 선생님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자애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누구와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같이 놀았고 상황은 반복됐다. 이 때 언니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전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어. 앞으로 펼쳐질 아이 인생에서 내가 매순간 바로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 애의 인생이잖아.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조언 정도만 해주려고.”

내가 추구하는 부모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고통 없는 삶이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항상 누군가 해결해주는 삶이란 없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의존적으로 보내면 성인이 돼서 언젠가 크게 부러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니 아들도 모함을 당할 때면 억울한 마음이 들 테지만 그 여자애와 어울리는 데는 아이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상처 받고 힘든 순간이 늘겠지만 그때마다 항상 지켜봐주는 엄마가 있다는 걸 알면 스스로 결정해나가는 단단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친정 엄마는 가난한 집의 10형제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부모의 관심과 경제적 뒷받침을 받기가 그만큼 어려운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엄마가 받지 못했던 것을 베풀면서 실천했던 것 같다. 애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는 엄마의 그러했던 사랑도 보인다.

나는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선생님이나 조력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다.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가끔씩 어른스러운 지혜를 빌려주는 친구. 자녀의 성적과 성취에 목매며 ‘매니저 엄마’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결국 아이의 인생인 걸’이라고 말하는 담대함을 갖고 싶다. ‘엄마도 처음이야’, ‘나는 미숙한 부모다’라는 말은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되뇌는 나의 주문이다.

이현미 국제부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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