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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이 아니라 고열로 드러눕지 않는 한 언제나 엄마다. 퇴근 후 팔다리가 녹아내릴 것 같은 날이면 문득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현관에 들어선 순간 “엄마, 엄마”를 외치며 순도 100%의 기쁨을 표현하는 아이와의 저녁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언제든 자유롭게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보며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다면 우리 집의 풍경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원했다. 다만 남성 육아휴직의 사례가 없는 직장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다. 주변의 많은 선후배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아휴직을 했다더라”는 소식이 들리는 남성의 사례는 그것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질 만큼 희소성이 강했다.
육아휴직을 했던 남성들이 그분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별종 새끼”, “너 또라이지?”라는 언어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많았다. 내 자식 내 손으로 키우겠다는데 ‘또라이’라니…. 뒤통수도 아니고 면전에서 대놓고 험담을 했단다. 여정연 박사는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은 욕을 먹더라도 의지에 따라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등이었다”며 “비정규직은 말조차 못 꺼낸다”고 말했다.
국제부에 근무하는 나는 지난 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홈페이지에서 재미있는 통계를 발견했다. 눈을 한번 깜빡여 씻고 다시 바라봤다.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유급휴가’ 1위에 코리아(Korea)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이 코리아가 북한(North Korea)일리도 없고. 우리 밑에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가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법적 토대는 마련됐지만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게 너무나 많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의 육아 숙련도가 부족해 내가 나설 때가 많다. 아이를 돌보는 기쁨은 크지만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 움직여야 할 때는 남편의 미숙이 참으로 아쉽다. 남편이 나만큼 아이와 유대를 쌓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여성에게만 육아휴직을 용인하는 건 남성에 대한 차별이지만, 그 피해는 워킹맘의 독박 육아로 다시 여성에게 돌아온다. 언제쯤 남녀 모두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날이 올까. 육아휴직을 원하는 아빠들만큼이나 워킹맘에게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절실하다.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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