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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4> 우리는 왜 아이를 낳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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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30 14:00:00 수정 : 2016-05-20 14: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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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입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늑대인간인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수많은 삶의 고비를 넘긴 엄마가 어느새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려는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인생 여정을 담고 있다. 인간이 아닌 늑대의 길을 선택한 아이를 눈물로, 사랑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영영 떠나보내는 부분은 ‘자식을 키우고 사랑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을까?’

10대 사춘기 시절, 자신이 세상 속 쌀알마냥 작아 보일 때마다 이런 단상이 떠올랐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던 엄마가 “너만 없었어도 내가….”라는 혼잣말을 할 때면 같은 말이 맴돌았다. ‘그럼 나를 왜 낳았어?’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의 한 장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엄마의 생활은 고단했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일하고 때때로 남편에게 시달렸던 엄마는 성실과 인내의 표본이었다. 어린 눈에도 그 삶이 고되고 서글퍼 보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럼 나를 왜 낳았는데?”라며 따져 묻지 못했다. 나의 말에 엄마는 상처를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의문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비관적 생각으로 자라났다. 한국 여성 최초로 독일에서 유학했던 전혜린(1934∼1965)씨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는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녀는 “내 이기심으로 한 생명을 창조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신랑이랑 연애 감정이 싹트기 전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였다. 원하는 자녀 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한두 명이라고 답하는데 신랑은 “여건이 되면 셋 이상 낳고 싶다”고 했다. 나의 대답은 “계획 없다”였다.

극과 극의 대답을 했던 남녀는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면서 지지고 볶았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최고의 마음을 만났다”고 했던 경(이나영)의 경탄이 내 가슴에서 터진 것도 아니었는데 이 남자랑은 헤어져도 다시 만났다. 이건 운명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출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었다.

신랑에게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애를 낳아봐야 진정으로 인생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손주를 안겨드리는) 도리를 해야 한다”, “삶의 수순이다”, “태어난 아이도 고마워할 거다”라고 했다.

애가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출생을 당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반박했다. 남편과 나의 세계관이 달라 빚어진 충돌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긍정적인 시선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 삶의 의미는 가치있는 것이었다. 반면 내게 출산은 언젠가 이뤄질 지구 멸망기에 내 후손에게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없는 존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무(無)로 있으면 희노애락에 개의치 않을 텐데 그런 평온을 깨고 나와 연결된 존재를 세상에 내놓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이 하나둘 엄마가 되었다. 친구가 세상을 다 껴안으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면 아이는 “엄마, 엄마”를 외치며 종종 걸음으로 뛰어왔다. 내가 이기심이라 여겼던 마음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아이는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유년의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할 아이, 하지만 성인이 돼서 품을 떠날 아이…. 남편이 말한 “애를 낳아봐야 진정으로 인생을 알 수 있다”는 말의 의미가 다가왔다. 첫 사랑의 설렘처럼 아이에 대한 상상으로 두근거렸다.

나는 “왜 나를 낳았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기쁨과 설렘, 행복은 나를 위한 것이지 아이 입장에서 온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결혼과 출산이 아니라 고통이야말로 모두가 겪게 되는 삶의 관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사춘기의 시련 앞에서 ‘왜 태어났을까’라는 파도를 맞게 된다. 아이가 그렇게 흔들릴 때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런 주장을 위안으로 삼았다. 캐나다 퀸스대 크리스틴 오버롤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아이를 갖는 것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를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선 설명과 정당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이를 갖기로 한 선택의 경우야말로 잘못하면 세상에 태어날 생명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반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아이를 낳는가?’에 대한 고민은 양육의 질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출산에 대한 나의 의구심과 두려움을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한 양분으로 자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연일 친자식을 죽이거나 모질게 때리는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며 용기내어 말하기로 했다. 저출산 시대에 우리는 미혼이나 딩크족(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 “왜 아이를 안 낳냐?”고 채근하지만, 교수의 말마따나 사실은 아이를 낳기로 한 대다수에게 “왜 아이를 낳기로 했냐”고 따져물어야 한다.

이현미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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