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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남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과총, 정책 평가 넘어 의제 선도하는 이슈 리더로 전환”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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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강은 산업부장, 정리=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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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60년 역대 두 번째 여성 회장 맡아
‘공명하는 혁신’으로 국가 의제 먼저 제시
최대 R&D 예산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

기초연구엔 끊김 없는 ‘인내자본’ 필요
20년 뒤 기대할 수 있는 연구 환경 만들고
인재 유출에서 ‘인재 순환’으로 바꿔야

AI가 답 내는 시대일수록 ‘백 투 베이직’
정답 찾기보단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과학기술의 성과 국민 삶으로 돌아가야

인공지능(AI)이 수학·과학 난제를 풀고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는 시대다. AI 성능이 높아질수록 그 토대가 된 기초과학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당장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연구가 계속될 수 있게 연구개발(R&D) 기반을 다지고, 우수 이공계 인재를 지키는 것이 향후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어서다. 내년도 정부 R&D 예산안은 역대 최대인 39조5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지난 정부의 대규모 삭감으로 흔들린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고 AI 시대에 맞는 연구 기반을 세울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시기에 국내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966년 9월 71개 학회가 모여 공식 출범한 과총은 과학기술진흥법 제정과 과학기술 전담부처 설치, 과학의 날 제정을 정부에 건의하며 국내 과학기술 제도의 기틀을 놓았다. 현재는 604개 학회·공공기관·기업 연구소와 20개 재외 한인과학기술자협회를 잇는 국내 최대 과학기술인 연합단체로 성장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과총 창립 60주년 기념식(30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권 회장은 “서로 다른 결합이 공명을 통해 강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벤젠의 공명구조’처럼 분야가 다르더라도 협력하면 과학기술계 목소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창립 60돌 행사가 그러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과총 창립 60주년 기념식(30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권 회장은 “서로 다른 결합이 공명을 통해 강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벤젠의 공명구조’처럼 분야가 다르더라도 협력하면 과학기술계 목소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창립 60돌 행사가 그러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올해 3월 취임한 권오남(65) 과총 회장은 자신을 “비주류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60년 역사상 두 번째 여성 회장이자 최초의 수학 전공자, 사범대 교수, 현직 교수 출신 회장이다. 장관이나 대학 총장, 연구기관장을 지낸 원로가 주로 맡아온 자리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올랐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권 회장은 “과학기술계를 연구현장에서 봐 왔다”며 “중심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과 문제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회장 출마를 결심한 계기 중 하나는 2023년 세계 한인과학기술인대회 단체 사진을 보고 나서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과총 회장, 재외 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들이 늘어선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 권 회장은 “누군가는 나서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취임 후 이사회 여성 임원 비율을 기존 15%에서 25∼30%로 높였고, 40·50대와 지역 인사의 임원 참여를 대폭 확대했다. 권 회장은 “새로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실제 사업과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회장의 역할은 더 많은 사람이 논의와 결정에 참여하도록 판을 넓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회장이 내건 구호는 ‘공명하는 혁신’이다. 서로 다른 학문과 세대, 지역의 목소리를 모아 과학기술계가 국가 의제를 먼저 제시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을 뒤따르는 ‘이슈 팔로어’에서 의제를 선도하는 ‘이슈 리더’로 과총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권 회장은 “과총의 다음 40년은 정책을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며 과학기술의 가치를 국민과 나누는 시간이 돼야 한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표하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꿨느냐로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권 회장과의 일문일답.

 

ㅡ내년 정부 R&D 예산이 역대 최대다.

 

“‘얼마나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를 물어야 할 때다.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비의 약 80%는 민간이 부담한다. 기업은 가까운 시일 안에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 응용연구에 집중한다. 정부 R&D는 기업이 하기 어려운 기초연구,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도전적 연구,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에 먼저 투입돼야 한다. 연구비가 과제를 따고 평가·정산하는 행정이 아니라 연구자의 시간으로 이어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연구 연속성도 중요하다. 갑자기 지원이 끊겨 연구실이 문을 닫으면 이를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ㅡ지난 정부에서 대규모 R&D 예산이 삭감돼 충격이 컸다.

 

“예산은 1년 단위로 편성되지만 연구는 그렇지 않다. 한 번 흩어진 연구팀은 다음 해 예산을 늘린다고 다시 모이지 않는다. ‘계속 과제’ 예산이 갑자기 줄면 연구비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의 자리가 사라지고, 여러 해 동안 쌓은 연구 기반도 무너진다. R&D에 비효율이 있다면 고쳐야 하지만 객관적인 근거와 현장과의 소통, 진행 중인 연구를 정리할 전환기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장기 투자 원칙을 세워야 한다. 연구자가 5년, 10년 뒤를 내다보려면 국가의 투자 방향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R&D는 여야를 가를 문제가 아니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총단체연합회장 /2026.09.22 최상수 기자
권오남 한국과학기술총단체연합회장 /2026.09.22 최상수 기자

ㅡ기초연구 홀대론도 여전하다.

 

“AI와 기초연구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AI도 수십년 전에는 쓰임을 장담하기 어려웠던 기초연구 위에서 탄생했다. AI·반도체·양자·바이오 같은 전략기술도 마찬가지다. 전략기술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만 기초연구에는 지속성과 다양성이 필요하다. 다음 돌파구가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넓게, 끊기지 않게 지원해야 한다. 기초연구에는 ‘인내자본’이 필요하다.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연구비를 끊으면 연구실을 닫아야 한다. 특히 수학 같은 분야는 작더라도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가 전략 분야에 집중할수록 아직 쓰임을 설명하기 어려운 연구를 지키는 것도 정부 몫이다. AI 예산 역시 AI를 연구하는 사람뿐 아니라 AI로 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가야 한다.”

 

ㅡ이공계 인재가 줄어드는 점도 우려된다.

 

“학생들은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고른다. 의약학뿐 아니라 취업이 보장된 반도체 계약학과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이유다. 거꾸로 말하면 연구자의 길은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이공계를 선택하라고 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입학보다 입학 이후가 중요하다. 대학원생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서 나아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어떤 연구자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박사후연구원과 신진 연구자가 자기 아이디어로 독립 연구를 시작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기여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아야 한다. ‘과학기술인이 되고 싶은 나라’는 이공계를 선택하라고 말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공계를 선택한 사람이 10년, 20년 뒤의 자신을 기대할 수 있는 나라다.”

 

ㅡ우리 인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할 텐데.

 

“인재 전쟁을 연봉 경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탁월한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연구할 수 있는가’이다. 국내에서는 정년을 맞으면 성과와 역량과 관계없이 연구실과 연구비, 학생 등 연구 기반이 한꺼번에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십년간 축적한 지식과 국제 네트워크는 정년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자의 정년과 연구의 정년은 같을 필요가 없다. 해외 인재를 불러오는 일도 월급만 올려서는 안 된다. 주거와 연구환경을 함께 봐야 한다. 모든 인재를 국내에 붙잡아 두는 것도 답은 아니다. 어디에 있든 한국 연구자와 연결해 공동연구와 인재 교류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과총은 ‘인재 유출’을 ‘인재 순환’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ㅡ최근 AI가 90년 가까이 풀리지 않던 수학 난제의 해법을 88시간 만에 내놓아 이슈가 됐다. AI의 빠른 진화에 명암이 엇갈리는데.

 

“AI의 발전 속도가 인간 연구자가 이해하고 검증하는 속도보다 빨라지고 있다.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답만이 아니다. 어떤 추론을 거쳐 증명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기법과 다음 질문이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AI가 낸 증명을 린(Lean) 같은 프로그램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맞다는 것과 인간이 그 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AI를 활용하면 연구와 논문 생산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생산성이 곧 창의성은 아니다. 연구자들이 AI가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에만 몰리면 연구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알파폴드처럼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신약 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큰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판단과 AI의 속도를 결합하는 것이다. AI가 만든 연구를 누가 검증하고, 누구의 기여로 인정하며, 오류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질지에 대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ㅡAI 시대 교육과 인재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I 시대일수록 ‘백 투 베이직’(기본으로 돌아간다)이다. 글을 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왜 그런지를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기초가 없으면 AI의 답을 검증할 수 없고, 검증하지 못하면 AI에 끌려가게 된다. 고등학생 때 ‘인수분해의 여왕’으로 불렸다. 방학 동안 인수분해 문제 2000개를 풀어 문제만 보면 바로 계산했지만 왜 인수분해를 배우는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계산 기술을 반복하는 데 무게를 두어 왔다. 이제는 정답을 빨리 찾는 교육에서 벗어나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따져보게 해야 한다. AI가 내놓은 풀이에서 빠진 조건과 논리의 비약을 찾아내는 수업도 필요하다.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과 AI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총단체연합회장 /2026.09.22 최상수 기자
권오남 한국과학기술총단체연합회장 /2026.09.22 최상수 기자

ㅡ창립 60주년을 맞은 과총의 역할은.

 

“과총 설립 당시 선배 과학자들은 국가 의제를 먼저 제안해 성과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과총도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데 머무는 것을 넘어 과학기술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먼저 꺼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슈 리더’가 돼야 한다. 과총의 미래비전은 ‘과학기술로 함께 여는 사람 중심 미래’다. 서로 다른 분야가 공명해 한목소리를 내고, 과학기술의 성과가 결국 국민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정책을 만들고, 국내외 과학기술인을 연결하고, 과학기술의 가치와 책임을 국민과 나누는 조직이 되겠다. 과총도 무엇을 어떻게 바꿨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1961년생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수학 전공) 학사 ●서울대학교 수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수학 박사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 ●제12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회장(2025년 8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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