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A씨는 지난 2023년 상차 작업 중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7일간 입원하며 치료를 받은 그는 이 기간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3000만원이 넘게 진료를 받았다. 산업재해로 산재보험을 청구해야 하지만, 건보를 부적절하게 받아 전액 환수 조치를 받았다.
최근 5년 반 동안 A씨처럼 산업재해를 건강보험 진료로 처리하다 적발된 사례가 23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사업주는 산재 발생 시 보험료 인상과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고를 고의로 은폐한 것으로 조사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공단이 적발한 산업재해 은폐·미신고 건수는 총 23만6512건이다. 연평균 4만3000건으로, 5년 반 동안 부당 지급된 액수는 약 328억원에 달한다.
업무 중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얻은 근로자는 산재 처리를 통해 산재보험에서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과 중복해서 보장되진 않는다.
적발 사례 중에는 근로자가 산재임을 인지하지 못해 일반 진료를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사업주가 산재 처리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경우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재가 은폐되면 피해 노동자는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지급할 필요가 없는 치료비가 지출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으로 급여가 청구된 건 가운데 산재로 의심되는 사례에 관해서는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산재 은폐·미신고 사례를 적발하고 있다. 일단 적발하면 산재 처리를 하게 하고, 이미 건강보험에서 지급된 치료비는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환수한다.
지난 2018년 건보공단이 서울대에 의뢰한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에서 연구진은 산재 은폐로 인한 건보 재정 누수 금액이 연간 최소 277억원에서 최대 32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건보공단은 이에 관한 연구를 최근 5년간 실시하지 않다가 올해 4월이 되어서야 다시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선민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재해사고에 대해 강력한 엄벌을 지시하고 있지만,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다 적발된 것만 매년 4~5만건씩 발생하는 등 현장에서는 산업재해사고를 감추기 급급한 실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로써는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자료연계에 의한 사후적발뿐 정부는 대안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손실 문제를 넘어 더는 산업재해가 은폐∙미신고되지 않도록 의료기관 진료시 산업재해와 건강보험을 즉각 구분하는 등 시급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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