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에서의 첫 퇴근길. 빨간 간선급행버스(BRT)의 맨 끝자리에 앉자, 서울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길 버스 안 사람들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다. 저마다의 휴대폰에 유튜브도, 모바일 뉴스도 아닌 KTX 예매 화면이 켜져 있었다. 행선지는 하나같이 같았다. ‘오송 → 서울.’
최근 해양수산부의 부산 연내 이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세종에서는 “KTX만 좋은 일 시킨다”는 농담이 들린다. 이전에는 서울과 세종을 오가던 공무원들이 이제는 서울과 부산, 혹은 세종과 부산을 오가게 될지 모른다. 전국 어디든 일터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개청 12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세종청사의 ‘정주(定住)’는 완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해수부 부산 이전의 명분으로 ‘지역균형발전’과 ‘북극항로 개척’을 내세웠다.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부산은 광역시이고, 인프라도 풍부하다. 북극항로는 국제 해운 환경 변화 속에서 주목받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번엔 비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의 이전이다. 이는 ‘지방 강화’보다 지방 간 자원 쟁탈전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해수부 직원들에게 이 변화는 결코 자발적이지 않다. 해수부 노조가 부산 이전에 찬성 의사를 표한 것도 전략적 후퇴에 가깝다. 세종시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주말이면 사람이 빠져나가는 행정수도의 상가 공실률은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상업용 부동산 시장 동향’ 통계에 따르면 세종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5.2%다. 전국 중대형 상가 평균 공실률이 13.2%인 것을 고려하면 세종 상가 공실률은 전국의 2배에 달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핵심 부처가 빠져나간다면, 세종은 더 공허한 도시가 될 것이다.
북극항로라는 국가 과제 역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북극항로 개발에 대비한 대규모 사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전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실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은 ‘해수부 부산 이전 비용 추계’에 따르면, 2026년에 부지 매입과 설계를 완료한 뒤 2029년까지 건축을 마치는 일정으로 가정할 경우 총 1673억800만원이 소요된다. 해수부 산하기관까지 포함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결국 중앙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른 사업의 재원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적 효과나 장기적 파급력에 대한 정밀 분석을 내놓지 않았다. 인천·대전 등 반발 지역을 설득하는 노력도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로 이미 결정된 사안이니 연구 신청도 눈치만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가 정책을 앞서면, 피해는 시민과 일선 공무원에게 돌아간다. 부산이 얻는 만큼 다른 지역이 잃는 구조에서는 국가 전체의 큰 그림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명분만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이전의 비용 대비 편익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다른 지역의 우려를 해소할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KTX만 좋은 일 시키는 정책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균형’이 아닌 ‘이동’만 반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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