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보다 비관에 주목하는 인류
韓도 ‘헬조선’ 자조적 절망 팽배
새 정부 출범하면 좀 나아질까
맬서스 법칙이라고 있다. 식량 증가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영국인 토머스 맬서스(1766∼1834)가 ‘인구론’(1798년) 책에서 주장했고, 교과서에 오래 소개될 만큼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 맬서스 법칙은 진화론 탄생에도 결정적이었다. 자연선택 원리를 발견한 찰스 다윈(1809∼1882)은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에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1838년 10월 나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재미 삼아 읽었다. 동식물의 습성을 오랫동안 관찰해 온 덕에 생존투쟁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컸던지, 이런 상황에서라면 유리한 변이는 제대로 보존될 것이고 불리한 경우에는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맬서스의 예측은 들어맞는 듯했다. 그가 죽고 130년쯤 지났을 때 ‘인구 폭탄’(1968년)이라는 책이 나왔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자(폴 에얼릭)가 낸 이 책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 어떤 비상 프로그램을 발동해도 늦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안다. 인구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비관론을 말한 미국인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예측이 빗나간 건 유아사망률 급감이 인구 증가가 아니라, 반대 방향의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백일과 첫돌을 잘 넘기는 아이가 늘수록 부모는 아이를 적게 가지는 선택을 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찰스 다윈은 자녀 둘을 어릴 때 잃었고 ‘자연선택’ 논문이 낭독된 런던 학회에 불참한 것도 10살이던 딸 애니가 죽었기 때문이었으나 요즘은 다윈같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을 잘 당하진 않는다.
‘맬서스 법칙’은 무너졌다. 현재 기준으로 미래를 재단해서 예측이 빗나갔다. 틀린 건 맬서스 법칙, 인구 폭탄 예측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는 걱정을 머리에 얹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핵 아마겟돈, 지구 자원 고갈론, 환경 파괴론 등 미래에 대한 비관론은 수없이 많았다. 핵 아마겟돈을 폈던 사람들은 “(청중을 향해) 2000년에 여러분은 모두 죽고 없을 거다”라고 장담했다. 비교적 최근의 ‘피크 석유’ 주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오발탄이 되었다. 석유 생산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피크 석유’론은 ‘셰일 석유’ 개발로 빗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건 ‘지금 다시 계몽’(미국 하버드대학교 스티븐 핑커)과, ‘이성적 낙관주의자’(영국 진화생물학자 매트 리들리) 책의 골자이기도 하다. 사람은 비관론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으며, 희망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낙관론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비웃는다. 매트 리들리는 이와 관련해 “왜 낙관론자는 바보이고, 비관론자는 현자로 대우받는가”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팩트풀니스’(한글판 2019년)는 이들 책보다 나중에 나왔고 한국에서도 꽤 주목받았다. 스웨덴 의사이자 통계학자가 썼고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에 관해 말한다. 이 책을 열면 저자가 낸 13개의 문제가 있다. 세상의 현주소를 독자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자가 점검해 보라고 하는 거다. 나도 풀어봤다. 13개 중 4개나 틀렸다. 그중 하나는 ‘오늘날 세계 평균 기대 수명은 몇 살일까’이다. 나는 50세를 선택하려다가 60세를 찍었으나, 정답은 ‘70세’였다. 지구 평균이 이렇게 높다니,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읽게 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미래를 어둡게만 얘기하는데, 책을 보고 세상을 밝게 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라는 것이다. 한 학생은 스승의 날에 그에게 쓴 편지에서 “데이터가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보게 만드는지를 체감했다. 수학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비관론자가 너무 많다.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모든 게 놀라운데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한국도 ‘헬조선’이라는 비관론에 푹 젖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건 한반도 역사상 최대의 농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새 대통령이 나오니 분위기 전환을 기대한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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