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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에 말 붙이는 데만 석 달”… 시설 모시기 진땀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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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17 22:00:00 수정 : 2023-12-18 0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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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거리상담’ 동행

매일 저녁 복지사·봉사자들 모여
터미널 은거 노숙인 일일이 안부
도시락 건네며 신중히 동향 살펴
“섣불리 접근하면 관리망 밖 도망
노숙 만성화될수록 입소 어려워”

“우리 역할은 혼자 두려움에 떨며 죽는 노숙인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적어도 누군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게 하는 것, 그게 올겨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엔 구세군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서울시립 노숙인 지원 기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출동 준비로 분주했다. 매일 저녁 센터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이 서울 각지 노숙인이 있는 거점으로 ‘찾아가는 거리상담(아웃리치)’을 나가기 위해서였다. 긴급입원이 필요한 노숙인을 파악하고 거주시설에 입소하도록 설득하는 이날 야간 아웃리치에 세계일보 취재진도 동행했다. 

 

지난 14일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소속 사회복지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일대 노숙인을 살피고 있다.

이날 오후 7시40분이 넘은 시간에 센터의 사회복지사 3명은 승합차에 탑승해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고속터미널 노숙인 26명을 지역사회에 정착시킨 김윤석 사회복지사는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의 지도’를 그린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터미널 곳곳에 은거하고 있는데, 안부를 확인해야 할 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는 설명이었다. 김 복지사는 “오늘은 이 양반을 따뜻한 시설로 모시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간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자활 체계 안으로 포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가 노숙인이 관리망 바깥으로 숨으면 겨울철 동사 사고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웃리치는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이들에 따르면 노숙인 대부분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아 동일한 복지사가 같은 시간에 최소 3개월은 찾아가야 말 몇 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오후 8시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은 흩어져 준비해 간 저녁 도시락을 건네며 노숙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새로 유입된 이들은 없는지 살폈다. 건물 구석구석 놓친 노숙인이 없는지도 꼼꼼히 확인했다. 이형운 다시서기센터 실장은 사람들의 ‘냄새’에 집중한다고 했다. 초기 노숙인은 겉으로 보기엔 말끔하지만 오랜 시간 씻지 못해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길거리 생활로 정신이 피폐해지기 전에 시설로 데리고 가는 편이 자활에 유리하다”며 “노숙 생활이 만성화될수록 입소 설득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고속터미널 곳곳에 고정적으로 노숙하는 인원은 칠팔십명에 달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노숙인까지 포함하면 130명 정도로 추산했다. 터미널 건물 앞 벤치에는 고령의 남성 노숙인이 비를 피해 서 있었다. 김 복지사는 입소를 권했지만 노숙인은 말없이 웃으며 핫팩만 받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김 복지사는 “지난번에 입소하겠다고 하셨는데 또 마음이 바뀌셨다”며 “핫팩으로 견딜 수 있는 추위가 아니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번 모든 걸 내려놨던 사람들인 만큼 재기하겠다는 욕구를 갖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이형운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앞 한 노숙인이 평소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그 노숙인 늘 이 자리에서 새우맛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며 생각에 잠겼다.

오후 9시30분쯤 돼서야 아웃리치가 끝났다. 이 실장은 “두 달째 터미널 앞에서 새우 맛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던 한 노숙인이 보이지 않는다”며 노숙인이 있었던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그때까진 적어도 컵라면과 소주를 살 돈이 있었다는 건데 오늘은 보이지 않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센터로 복귀하는 길이 늘 씁쓸하다고 했다. 그는 “인생을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17일 매서운 한파와 함께 전국 곳곳에 내린 폭설로 피해가 잇따른 가운데 노숙인의 안전 문제에도 큰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복지부가 5년마다 실시해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여전히 8956명에 달한다.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생각한다면 이보다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7일 박강수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 팀장이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와 영등포역 일대 거리 노숙인을 살피고 있다.

서울 영등포역 일대 노숙인을 관리하는 박강수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 팀장은 노숙인을 일반적인 시선으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추운 겨울 인근에 일시보호시설이 있는데도 역 모퉁이에서 침낭을 펴고 자는 노숙인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이 큰 이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 싹 데려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강압적으로 접근하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려 아예 생사 확인도 어렵게 될 우려가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7일 박강수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 팀장이 서울 영등포구 서울교와 영등포역 일대 거리 노숙인을 살피고 있다.

박기웅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 부장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부처 간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은 “노숙인은 장애인, 자립준비청년, 탈북자 등 복지망에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지자체의 노숙인 정책 하나만으로 다루긴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최근에는 정신질환 노숙인도 많은데 복지부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전문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당부했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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