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오후 제주국공항에 갑작스레 짙은 해무가 꼈다. 63m 높이 관제탑에서조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다. 관제사들이 긴장의 끊을 놓지 않는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관제 장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공항에 짙은 안개로 저시정 경보가 내려지고 구름 높이도 낮아 항공기 이착륙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항공기가 착륙에 실패하자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 꼽는 상황 중 하나인 항공기 복행(復行, Go-around) 상황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복행은 항공기가 착륙 시도 실패 후 급격히 기수를 높여 다시 날아오르는 과정을 일컫는다. 실제 이날 오후 4시 40분 김포를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941편이 제주 상공을 30여분 선회하다가 착륙을 시도했지만 실패, 결국 기수를 돌려 김포공항으로 회항했다. 다행히 회항한 항공편은 이 항공기 1대였다.
조종사들은 많게는 3차례까지 복행을 하면서 재착륙을 시도하고, 그럼에도 착륙하지 못하면 항공기 연료를 고려해 회항하기도 한다.
관제사의 작은 실수 하나, 비행기의 작은 결함 하나, 갑자기 휘몰아친 돌풍 등 다양한 변수가 항공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제주공항에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진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항공기 사고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급변풍에 하루 150차례 복행…관제 중 교신 끊기기도
급변풍(윈드시어)과 짙은 안개 등으로 인한 저시정 경보가 자주 발생하는 제주공항에는 항공기들이 착륙과정에서 복행하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일반 여객기는 전투기처럼 재빨리 방향을 바꾸기도 쉽지 않아 간격이 너무 가까워지면 항공기끼리 공중에서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 때 관제사들은 다급하게 ‘빨리 방향을 틀라’고 외치고 조종사는 ‘힘들다’고 말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진다.
관제사들은 고어라운드(복행)를 할 때가 제주 관제탑과 제주 접근관제소에서 느끼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꼽는다. 기상 악화 시 관제사는 급변풍 등 정보를 제공하고 유도할 뿐, 이착륙이나 회항은 항공사와 조종사가 결정한다.
관제사들은 제주로 오는 항공기의 비행 속도를 줄이도록 지시하고, 동시에 제주 하늘에 떠 있는 항공기들이 최대한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유도하지만 심한 경우 타지역에서 제주로 출발하는 항공기 이륙을 잠시 멈추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제주는 3월부터 5월 초까지가 급변풍이 잦아 특히 복행 횟수가 많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제주공항에서 하루 150차례 복행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

지난 2015년 12월 12일 오후 6시 50분 제주공항 관제탑의 통신 장비가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음성신호를 주고받는 통신장비의 고장으로 76분간 항공기 조종사와 제주공항 관제탑, 접근관제소 관제사 간 교신이 모두 끊겼다.
제주로 들어오는 비행기들이 공항 활주로의 이상 유무와 착륙 여부를 관제사를 통해 전혀 안내받을 수 없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일단 인천 지역관제센터(인천 ACC)를 통해 고고도에서 비행하는 제주행 항공기들을 모두 회항시켰고, 제주공항 항공기 이륙도 모두 멈췄다.
문제는 제주 접근관제구역 관할로 들어와 제주공항으로 향해 오는 항공기들의 착륙이었다.
공항 관제탑 관제사들은 최후의 수단인 빛총(Light Gun)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관제탑에서 빨간색·흰색·녹색 세 가지 불빛을 쏘아 공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들에게 착륙불가(복행하라)·대기·착륙 등 메시지를 보내는 도구다. 빛총으로 쏜 불빛은 공항 관제탑의 관제 반경인 9∼11㎞까지 빛이 나간다.
관제사들의 침착한 대처로 다행히 14대의 항공기가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1분30초마다 1대 뜨는 제주공항…급변풍 연간 300건
제주공항은 윈드시어가 1년에 평균 300건 이상 발생한다. 그만큼 제주공항 관제사들은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시시때때로 위기 상황과 맞닥뜨리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관제사가 많다고 한다. 관제탑은 하루 24시간 무중단 운영 체제다.
최근 5년간 항공 교통량을 보면 2018년 17만5992대, 2019년 18만1860대, 2020년 14만2874대, 2021년 16만6056대에 이어 지난해에는 17만7416대에 달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관제량은 486대다. 시간당 슬롯(이착륙 배정시간)이 35대로 1분 30초당 1대의 항공기가 뜬다.
관제탑(동)은 2003년 준공한 뒤 2012년 증축했지만, 관제실 공간이 좁고 기둥 부분 관제 사각지대화로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15일 국토부 제주지방항공청에 따르면 제주공항 관제탑 신축 사업은 관제 사각지대와 노후 관제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 8월 완공 예정이다.

1942년 군용비행장으로 개장한 제주공항은 1968년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3년 구 관제탑(높이 40.75m, 관제실 면적 32.9㎡)에 이어 2003년 현 관제탑(63.25m, 82.8㎡)이 세워졌다.
그러나 현 제주공항 관제탑은 관제실 북측 2개 기둥이 활주로 시야를 가리고 있다. 실제 지난 2017년 9월 해군 대잠초계기가 점검을 위해 동서 활주로를 횡단하다가 이륙 허가를 받은 민간 항공기와 충돌할 뻔한 일이 있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관제탑을 짓기로 결정하고 2019년 4~7월 진행한 ‘제주공항 관제동 신축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수립했다.
새롭게 짓는 관제탑은 연면적 5132㎡, 관제실 면적 204.6㎡에 높이 75m 11층 규모로 지어진다. 면적으로는 현 관제탑보다 두배 이상 규모다.
나웅진 제주지방항공청장은 “내년 8월 쯤 관제탑(동)이 완공되면 인천공항 개항 때처럼 최소 6개월은 시험운영을 해봐야 한다”면서 “체험단을 모집해 느낀 점, 불편한 점 등을 모니터링 하고 개선한 후에야 비로소 실제적인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2025년 상반기엔 새 관제탑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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