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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한 방울 안 나는데… ‘기름진 사회’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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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21 06:00:00 수정 : 2022-08-02 1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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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기름 안 나는 석유 다소비국

편리함에 길들여진 ‘석유로운’ 일상, 그 쌍둥이는 온난화 재앙

옷·가방·신발·카드·휴대전화…
일상 소비재 70% ‘석유화학’
유럽·日·美 석유소비 주는데
韓 2021년 9억 배럴… 7년 새 9%↑

플라스틱·합성 섬유·고무 원료 나프타
11년새 내수용 생산량만 23% 늘어나
일상서 석유화학 제품 소비 증가 입증

국내 온실가스 30%가 석유로 발생
석유화학 대체재 개발은 아직 멀어
기술 진보·사회적 지원 지속적 과제
당장 탄소감축 위해선 소비량 줄여야

김석유(가명)씨는 700g의 기름 옷을 입고, 600g의 기름 가방을 들고, 100g의 기름 신발을 신고, 80g의 기름 휴대전화를 챙겨 집을 나섰다. 김씨는 80㎏의 기름 차를 운전해 회사로 출근한다. 연비 11㎞/ℓ인 차를 5㎞ 몰며 기름 360g을 쓴다.

 

회사에 도착한 김씨는 45g의 기름 필기구를 들고 회의에 참석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5g의 기름 피복으로 덮인 충전기에 연결부터 했다. 기름 에어컨에서는 계속해서 시원한 바람이 나왔고 기름 냉장고 안에는 기름으로 만들어진 15g짜리 음료수 병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씨는 기름 노트북으로 오전 근무를 마친 뒤 배달 아르바이트생이 112g의 기름을 쓰며 오토바이를 타고 전해준 40g짜리 기름 포장용기에 담긴 냉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식후엔 카페에서 5g의 기름 지갑에서 5g의 기름 신용카드를 꺼내 13g의 기름 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흔히 ‘기름(석유)을 쓴다’고 하면 자동차 휘발유나 난방용 기름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상에서 석유를 걷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기름진’ 사회를 살고 있다. 석유의 상당 부분은 자동차나 발전용 ‘연료’로 쓰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양이 플라스틱 등 각종 석유화학의 ‘원료’로 사용된다. 옷과 가방, 휴대전화와 노트북, 벽지, 바닥재, 식음료 포장재, 자동차 내장재 등 일상 소비재가 석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서 발간한 ‘석유화학으로 만드는 세상’에 따르면 인체의 70%가 물로 구성됐듯 일상의 70%는 석유화학 제품이 차지한다. 신채호 충북대 교수(촉매반응공학)는 석유화학 없이 살려면 “나무를 쓰고 면, 비단처럼 식물에서 나오는 섬유를 쓰는 시대로 돌아가면 된다”며 “옛날처럼 불편하게 산다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기름진 하루하루를 어쩔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일면이라고 가벼이 넘기자니, 불편한 진실이 버티고 있다. 주요 선진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에서 석유 소비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일본도 주는데… 한국서만 느는 석유 소비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2000년대 초 7억배럴대였던 국내 석유 소비량은 2011년 8억배럴, 2016년 9억배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9억3747만배럴을 기록했다. 2015년과 비교하면 9%나 늘었다.

 

실제 석유가 어떤 산업에서 얼마나 늘어났는지 추이를 보면, 화학제품업(2010년 이후 46% 증가)과 도로(14% 〃) 부문이 증가세를 견인했다. 도로에서 연소되는 기름이 늘어난 건 차량이 그만큼 많아졌단 뜻이다. 2014년 2000만대를 넘긴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2500만대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국민 2명당 1대꼴이다. 도로에서 태운 석유의 양만 2020년 기준 2억4285만배럴로 지난해 전체 석유 소비량의 약 28%를 차지했다.

석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의 원료가 돼 ‘석유화학의 쌀’로 통한다. 지난해 기준 나프타 소비량은 2010년보다 36% 늘었다. 물론, 석유화학 제품이 모두 내수용은 아니다. 절반은 수출되고 나머지 반만 국내에서 사용되는데, 내수용 석유화학 제품 역시 같은 기간 927만t에서 1136만t으로 23% 증가했다.

 

국내 석유 소비 증가는 경제성장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각국의 ‘부문별 석유제품 최종 소비량’을 집계하는데, 덴마크와 핀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과 미국도 감소세를 보이거나 정점을 지난 뒤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동차 강국인 독일과 일본은 2000년을 전후로 수송용 연료 소비 정점을 찍었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BASF)가 있는 독일은 나프타 소비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줄어들고 있다. 한국처럼 석유 소비가 증가일로에 있는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정도인데 공교롭게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국과 함께 ‘기후악당’으로 꼽힌 전력이 있다.

◆대안은 없고, 온실가스는 늘고

 

우리가 쓴 석유는 온실가스로 되돌아온다. 원유를 정제하고, 주유된 차가 도로를 누비고, 나프타로 각종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부문별 배출량을 보면 5대 정유사 3100만t, 석유화학산업 7100만t, 수송부문 1억t으로 우리나라 총 온실가스의 약 30%가 석유에서 비롯됐다.

 

그나마 석유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와 전기 생산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원전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석유화학 산업은 뾰족한 수가 없다.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땐 원료인 나프타를 850도 이상 뜨겁게 가열해 가공하는데 이때 필연적으로 탄소가 배출된다. 따라서 석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대표적인 게 ‘바이오나프타’다. 바이오나프타란 폐식용유나 팜유 등 식물성 자원으로 석유화학의 원료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바이오나프타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기대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가격경쟁력 확보와 시설 교체 비용 등은 차치하고 기술 발전부터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진원 서강대 교수(생물화학공학)는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화학 플라스틱에 비해 아직은 경제성과 물성이 낮아 기술적인 진보와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석유화학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를 확보한 다음에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를 쓴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연구원은 “현재 석유 소비는 대체돼 줄어드는 게 아니라 소비 절감을 통해서만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라며 “궁여지책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소비를 줄이거나 에너지 효율 개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100% 원유를 수입하니까 고유가가 될수록 수입으로 외화 유출이 많아지는 구조”라며 “경제를 위해서라도 석유를 아껴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유빈·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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