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투아니아로 향하던 여객기가 벨라루스로 방향을 틀어 비상 착륙한 뒤 체포된 벨라루스 반체제 성향 언론인의 아버지가 고문 가능성을 언급하며 걱정을 내비쳤다.
벨라루스 야권의 소통 창구로 쓰이던 텔레그램 뉴스 채널 넥스타(NEXTA)의 전 편집장 라만 프라타세비치(26)의 부친 드미트리 프라타세비치는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아들이 벨라루스 당국으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을지 “정말 두렵다”고 밝혔다.
프라타세비치의 부친은 “아들이 잘 대처하기를 바란다”면서도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무섭지만, 그는 구타와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 그게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정말 충격을 받았고 정말로 분노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21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벨라루스 당국에 전례 없는 압박을 가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압박이 효과를 발휘해서 벨라루스 당국이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했다.
프라타세비치는 전날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는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탔다가 비행기가 갑자기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으로 방향을 틀어 비상 착륙한 뒤 공항에서 체포됐다. 강제 착륙은 1994년부터 27년간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으며, 여객기 호송을 위해 전투기까지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행기 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한 프라타세비치는 겁에 질려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프라타세비치는 주변 승객들에게 “사형에 처해질까봐 무섭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벨라루스는 여전히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는 국가다. 그는 여객기 비상 착륙 후 여자친구 소피아 사페가와 함께 체포됐는데, 사페가가 무슨 혐의로 체포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사페가의 모친은 BBC 인터뷰에서 딸이 민스크 교도소로 끌려갔다면서 “딸이 왓츠앱으로 마지막으로 쓴 단어는 ‘Mummy’(엄마)였다”고 전했다.

벨라루스 당국은 이번 강제 착륙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위협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이번 사건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며 벨라루스 측 주장을 부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벨라루스의 주장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밖에서 작전을 수행한 일이 없으며, 그럴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고 BBC는 지적했다.
프라타세비치는 체포된 뒤 촬영한 동영상에서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히면서 자신이 받는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러나 벨라루스 주요 야권 운동가들은 “프라타세비치가 잘못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을 것”이라며 동영상이 강압 때문에 촬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프라타세비치를 비롯한 승객 126명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은 이번 여객기 비상 착륙 사태를 ‘공중 납치’라고 규정한 서방 국가들은 벨라루스 제재에 나섰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정상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항공사 소속 여객기의 역내 영공 비행 및 공항 접근을 금지하는 경제제재안에 합의했다. EU 정상들은 또 역내 항공사에 벨라루스 상공 비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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