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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신라의 얼굴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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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4 22:43:36 수정 : 2019-12-04 22: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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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기이(秋齋紀異)’. 조선 후기 조수삼이 엮은 책이다. 그는 영조∼헌종 때의 여항 시인이다. 책에는 풍물과 일화가 수두룩하다. 닭을 닮은 노인, 차돌을 깨는 차력사, 일지매,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 음담패설 이야기꾼…. 해학이 넘친다. 재주 부리는 원숭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거지가 있었다. 그는 원숭이 재주를 보여주며 구걸을 해 먹고살았다. 아끼는 원숭이에게 한 번도 채찍질을 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거지가 병들어 죽자 원숭이는 울면서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눈감은 주인을 대신해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돈을 구걸했다. 화장터에 따라간 원숭이. 섶에 올려진 주인의 시신이 불타자 구슬프게 울면서 불에 뛰어들었다.’

원숭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청나라 연경에 간 연암 박지원. 피서산장과 저잣거리에서 재주 넘는 원숭이를 봤다. 거지의 원숭이도 청에서 온 걸까. 시간 저편에 잠든 역사 속의 일상. 웃고 울고 화를 낸다. 사서(史書)의 메마른 문장에서는 느끼기 힘든 삶의 향기가 풍긴다.

1600여년 전 신라 무덤에서 얼굴 모양을 새긴 토기 한 점이 출토됐다.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발굴한 토기다. 높이 28㎝. 진흙 토기에는 사람 얼굴이 새겨져 있다. ‘투각인면문옹형토기’라는 복잡한 이름을 붙였다. 토기 제작 기법과 특징으로 볼 때 5세기 전반 또는 그 이전의 것이라고 한다.

신라에서 왕의 호칭을 사용한 것은 법흥왕(재위 514∼540년) 때부터다. 그 이전인 5세기에는 임금을 이사금(尼師今)·마립간(麻立干)으로 불렀다. 모두 임금을 이르는 이두식 표현이다. 토기에는 그 시대의 삶이 드러난다. 토기 세 면에 새겨진 얼굴의 표정은 웃는 듯 찡그린 듯하고, 또 무표정하다. 토기 하나를 만드는 데 무슨 혼을 담았을까마는 표정에 새겨진 혼은 어떤 예술작품보다 진하게 풍겨난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천년 세월을 넘어 신라 여항의 삶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화향천리행(花香千里行) 인덕만리훈(人德萬里薰).”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리에 향기롭다. 이런 말은 없을까. “사향천년류(史香千年流).” 역사의 향기는 천년을 넘어 흐른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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