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맘 김모(32)씨는 최근 무심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다 한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서 광고하는 초소형 망원경 제품 이미지에 여성 나체가 합성돼 있던 것. 김씨는 “상품명과 상세 설명에는 ‘운동 경기 관람용’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이미지상으로는 여성을 몰래 훔쳐볼 때 쓰라는 의도 같았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SNS에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광고가 떡하니 올라와 있다니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쇼핑몰은 지난 6월 초소형 감시 카메라를 ‘몰래카메라’라는 설명을 달아 판매했다가 ‘불법 촬영 범죄를 부추기냐’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거센 질타가 쏟아지자 광고 및 해당 제품 판매를 중지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부적절한 이미지를 쓴 망원경 제품을 홍보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범죄 개연성이 높은 제품의 판매 및 구매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남자를 위한 카메라’… 온라인에서 버젓이 판매
소위 ‘몰래 카메라’ 등 사생활 침해 범죄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별개로 아직도 온라인에선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듯한 제품 광고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세계일보 확인 결과, ‘펜 카메라’, ‘안경 카메라’, ‘물통 카메라’ 등 식별이 쉽지 않은 초소형 카메라들이 중소형 온라인쇼핑몰에서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다. 제품 설명에는 ‘몰카탐지기에 안 걸리는 제품’, ‘남자를 위한 카메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누구나 본인인증 등의 절차 없이도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GPS 위치추적기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일부 제품은 ‘배우자 바람 증거’, ‘남편 위치’, ‘아내 조사’ 등의 자극적인 상품 설명이 달려 있었다. 지난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등촌동 전처 살인 사건’의 피의자도 GPS 위치추적기를 이용해 숨어 지내던 피해자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범죄 개연성을 의식해서인지 한 GPS 위치추적기 판매자는 제품 설명에 “유아나 치매노인 실종 방지를 위해 제품을 써달라”며 “타인의 사생활 침해나 불법적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본사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단속 쉽지 않아… 전문가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필요”
이처럼 일부 업체들이 ‘몰카 범죄’, ‘데이트 폭력’ 등 불법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노골적인 광고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잠재적 범죄 가능성’만을 이유로 제품의 판매 및 유통을 규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불법 논란이 일 때마다 일부 판매 업자들은 초소형 카메라는 ‘방범용’, 초소형 망원경은 ‘경기 관람용’, GPS 위치추적기는 ‘미아 방지용’ 등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규제에 반발해왔다. 한 판매 업체는 불법 여부에 대해 문의하자 “부엌칼이 살해에 쓰였다고 해서 부엌칼 자체를 판매 금지할 순 없는 것 아니냐”며 “악용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도구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6월 청와대가 여성에 대한 불법 촬영 범죄를 막기 위해 이른바 초소형 카메라 판매 등록제를 도입하고, 구매자의 인적사항과 판매량을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규제 기준이 모호하고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1일 “해당 제품이 아직 범죄에 쓰이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나 구매만으로 불법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단순히 제품 판매나 구매만을 규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불법촬영, 데이트폭력, 성범죄 등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며 “이를 바꾸지 않으면 판매 규제 정책도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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