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정상회담의 막후 공간은 각 정상이 머물 호텔, 그중에서도 최고급 객실이다. 정상급 외교일행을 수용할 수 있는 고급호텔은 각국 대통령 또는 총리를 위한 특별한 객실을 만들어 자신들의 자존심으로 내세우는데, 이를 보통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로 부른다.
◆하노이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호텔업계에 처음 등장한 건 미국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1913∼1921년). 워싱턴 백악관을 떠날 때마다 윌슨 대통령은 북반구에선 남향, 남반구에선 북향에 개인 욕실과 옷장을 갖춘 객실에서만 묶을 것을 고집했다. 당시만해도 개인 욕실을 갖춘 객실은 흔치 않았다고 한다. 각 호텔이 이러한 기준에 맞춘 고급 객실을 만들어 프레지덴셜 스위트로 부른 게 현재에 이르렀다. 다만 왕실이 있는 문화권에선 프레지덴셜 스위트 대신 로열 스위트(Royal suite)가 최고급 객실의 영예를 차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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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숙소로 유력한 JW메리어트 하노이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거실. |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숙소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머물렀던 JW메리어트 하노이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면적 320㎡(96.8평)로 하노이에서 가장 좋은 객실로 꼽히는 이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총 8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널찍한 거실에는 10명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이 놓여있을 정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하루 숙박료는 7000달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머물 숙소로는 현지 북한대사관과 가까워 북측 인사들이 자주 머문 멜리아 하노이가 거론된다. 하지만 이 호텔엔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없어 ‘최고존엄’인 김 위원장이 과연 이 호텔을 택할지 의문이다. 고도(古都) 하노이에는 셰러턴, 힐튼, 뉴월드, 인터콘티넨털 등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갖춘 최고급 호텔이 즐비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엔 서울의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빛날 차례다. 서울 시내 프레지덴셜 스위트 중에선 포시즌 호텔 객실이 면적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 기존 유명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면적이 300㎡대인데 포시즌은 총 413㎡(124.9평)에 달한다. 직접 살펴본 바 현관·거실·주방·미디어실·집무실·침실·욕실·화장실·러닝머신룸으로 짜인 실내는 여러 미술품도 돋보였다. 압권은 거실 천장을 장식한 1억원대에 육박하는 체코제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10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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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포시즌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포시즌호텔 웹사이트 |
남산 기슭의 반얀트리 서울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315㎡(95.2평)의 복층 구조인데, 1층에 식당·거실과 함께 작은 풀을 갖춰놓은 점이 특징이다. 2층에는 다시 넓은 욕실과 함께 두 개의 침실을 꾸며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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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얀트리 서울의 남산 프레지덴셜 스위트. |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상층부를 차지하는 시그니엘서울은 프레지덴셜 스위트와 로열 스위트를 모두 갖춘 경우다. 99층 143㎡(43평)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보다 로열 스위트가 100층 353㎡(107평)로 더 호화로운데 층고가 6.2m에 달한다. 온갖 최고급 명품으로 치장했는데 티슈 케이스가 ‘보테가 베네타’제. 1박 가격은 약 2000만원(세금 및 봉사료 별도). 롯데호텔은 지난해 8월 새로 개장한 서울 중구 이그제큐티브타워에도 최고급 객실로 로열 스위트를 꾸몄는데 독일 베히슈타인 그랜드피아노까지 들어찬 거실을 포함해 그 면적이 460.8㎡(139.3평)로 포시즌 프레지덴셜 스위트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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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서울 프레지덴셜 스위트. |
신축 호텔들이 이처럼 급부상하고 있지만 그간 세계 2대 강국인 미·중 정상의 서울 숙소는 그랜드하얏트와 서울신라호텔이 주로 맡아왔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다녀간 서울 남산 기슭 그랜드하얏트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면적 337㎡(101.9평)로 모두 7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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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하얏트 프레지덴셜 스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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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서울신라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 노스윙 거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05년 저장(浙江)성 서기였을 때부터 이용했던 서울신라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풍으로 꾸며진 노스윙과 현대적 감각의 사우스윙 두 종류다. 노스윙 면적은 약 290㎡(87.7평) 크기로 침실엔 마호가니 소재의 가구와 벽난로가 설치됐으며, 커다란 창이 난 욕실엔 핀란드식 사우나도 설비돼 있다. 사우스윙은 380㎡(114.9평) 크기로 남프랑스 풍에 전통 오동나무장, 협탁, 도자기 등 한국적 요소가 결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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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애스톤하우스 내부. |
다른 무엇보다 보안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될 김 위원장 서울 숙소는 이 같은 프레지덴셜 스위트보다 이미 두 차례나 평양 땅을 밟은 최태원 SK회장의 워커힐 애스톤하우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정은 국방위원장 방남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 풍설도 도는 애스톤 하우스는 대지 5280㎡, 연면적 1413㎡(427.4평)의 최고급 빌라로 경호에 유리한데다 방탄유리에 도청방지 장치 등까지 갖춰져 있다고 한다. 각 호텔의 자존심 격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연중 손님이 묶는 경우가 며칠 안 된다는 게 정설이다. 공식 숙박료는 기천만원대지만 실제 숙박료는 전화 상담 등을 통해 정해지며 편차가 크다고 한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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